조선조 충신 충문공[忠文公] 매죽헌[梅竹軒] 성삼문[成三問]선생 추모제향이 12월 6일 오전 11시 논산시 가야곡면 양촌리 성삼문선생의 묘역에 위치한 사송당[思松堂] 성인각[成仁閣]에서 봉행됐다,
임성규 논산시장이 초헌관, 송구영 숭현서원 [대전 유성구 원촌동 소재]원장이 아헌관, 이승선 가야곡면장이 종헌관을 맡아 전통적인 유교제례방식으로 거행된 이날 성삼문 선생의 추모제향은 김명규 논산시 유림협의회 회장 조문형 은진향교 전교 등 지역유림 및 성삼문선생의 문중 창녕성씨 관계자 등 50여명이 참석 만고충절 성삼문 선생의 넋을 기렸다,
1984년 5월 17일 충남도지정 문화재 제81호로 지정된 성삼문 선생의 묘소에는 조선조 세조임금때 사육신의 한사람인 선생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한강가에서 능지처사[陵遲處死]를 당한후 그 시신이 전국의 산하에 나뉘어 매장되는 과정에서 그 일지체가 매장된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지역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성삼문 선생이 거열형을 당한후 그 시신을 전국에 조리돌릴때 선생의시신 일지체[一支體]를 지게에 지고 양촌리 고개를 넘던 지게꾼이 고개마루에 잠시 몸을 쉬며 ""어휴 날은 덥고 몸은 고단하구,," 하며 불평을 하자 지게에 짊어져 있던 선생의 일지체[一支體] 에서 "그렇게 힘들면 여기 아무데나 묻어라"는 소리가 들려 오자 이에 놀란 지게꾼이 달아나고 인근의 선비들이 선생의 일지[一支體]를 현재의 묘소에 매장하고 장례를 모셨다 한다,
그런 연유로 이 고개 이름은 "성삼문재"로 불리우게 됐고 묘소바로 옆에 한그루 소나무가 곧게 자라 낙낙장송이 되었대서 사람들은 이 고개이름을 사송재 라고 부르게 되었고 묘소입구에는 하마비가 세워져 있는데 이곳에서 말을 내리지않고 그냥 지나치던 사람은 말에서 떨어져 죽고 다쳤다는 일화가 전해져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