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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난해 워싱턴 DC에 있는 미(美) 존스홉킨스대에서 객원교수로 머물면서 국제사회에 대한 이해를 다시 하게 될 기회가 있었다. 가장 주목할 것은 경제 강대국 미국이지만 어딜가나 온통 중국제 천지란 점이다. 손수건, 연구실용 책상 등 혹시 미국산이 있나 상표를 눈여겨 보면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였다. 한 달에 30회 이상 열리는 각종 대학세미나도 3분의 2는 중국에 관한 주제인 것 같았다.
존스 홉킨스대 체류 중 동북아평화번영 공동연구로 북경대 방문교수 자격으로 두어달간 출장을 가게 되었는데 이 또한 중국을 살필 호기였다. 중국 4대 기서(奇書) 중의 하나로 꼽히는 서유기에 나오는 실크로드를 지나면서 고온지대 투르판과 위구르족 조선족 티벳족 몽고족의 거류지를 돌아봤다.
위구르족의 수도인 투르판에서 신강성 수도 우르무치까지는 약 200킬로미터로, 서울서 강릉 거리다. 이 구간 바닥에 석유가 매장돼 있다. 거기서 나오는 석유만 해도 중국이 250년동안 먹고 산다고 한다. 투르판에서 오는 고비사막 바닥은 석탄 덩어리다. 자원이 매우 풍부한 중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쿠바의 유전 80%를 이미 매수했고, 캐나다 북부 오일샌드 40%도 사들였다고 한다. 이 뿐인가. 실리콘밸리에서 망하는 공장들을 중국이 집어삼키고 있다. 중국 해군은 미국 잠수함의 부속품 도면을 해킹할 정도로 정보기술(IT)이 세계적이다.
문화상품도 지구촌 패션1번지 뉴욕을 따라 잡는 건 시간문제다. 중국에서 자금성 만리장성 이화원을 관광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이보다 ‘북경798예술단지’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세계 제2차대전 때 군수공장을 수리해서 만든 ‘예술의 거리’다. 종로구 면적만 할 것이다. 뉴욕에도 없는 미술품이 모여 있다. 그림 음악 젊은이 등으로 전세계 관광객이 쇄도한다.
11억명 인구 인도는 어떤가. 아직은 절반이 문맹이라지만 글을 읽을 줄 아는 인도인의 하루 독서량은 1시간 30분이다. 4천 7백만명 인구의 우리나라는 일일 평균 8분 책을 읽는다고 한다. 인건비도 싸고 소프트웨어 기술이 탁월한 인도에서 미(美)항공사들의 여행권 발매, 미(美)선거운동 등이 인터넷으로 이뤄지고 있다. 천연가스 석탄 석유도 많다.
다음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인구 중 2백만명이 극빈층이다. 게다가 공권력이 부족하고, 마약과 강도가 설쳐대는 곳으로 악명높다. 그러나 브라질도 풍부한 자원과 광활한 땅을 보유하고 있고,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최근 귀국하면서 우리의 살길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게 되었다. 세계 최고의 교육수준과 첨단기술 개발로 경제 10위권에 있는 한국은 20년~30년 후 이들과 경쟁해서 이길 게 무엇일까. 자원? 인구? 물론 경쟁이 안된다. 교육과 기술력도 급속도로 평준화되어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할 수 없는 것을 해야 한다. 그게 바로 진정한 선진국인 청렴국가를 건설하는 일이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청렴수준(CPI)은 180여국가 중 40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0개 회원국이지만 하위권으로 평균치에 진입하려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만일 중국(72위)이 부패가 없었더라면 미국(18위)은 중국 발아래에 있을 지도 모른다. 우리도 과거 경제개발 시대에 그랬듯이 러시아(147위) 인도(85위) 브라질(80위) 등 먹고사는 문제 해결이 급한 브릭스(BRICs)권의 공직사회 비리는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다. 유교사상이 뿌리깊은 우리는 나쁜 일하면 부끄러워할 줄 아는 국민적 정신이 있다.
가장 깨끗하고 청렴한 나라를 만드는 게 우리의 자원이고 무기다. 실제 자원과 무기가 빈약한 한국으로서는 미국의 대표적 국제 정치학자 조지프 나이가 주창한 것처럼 문화 가치 이념 등을 통해 타국이 자국에 동의하게 만드는 ‘소프트파워’를 길러야 한다. 외국기업이 와도 불이익을 안 당하는 나라, 공평한 나라, 부패가 없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소프트파워다.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