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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의 글을 읽는 것은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를 바라보는 것처럼 위태롭다. 정확히 조준된 표적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숨을 멈춘 채 바람을 가를 순간을 기다리는 사수의 자태처럼 혁명가의 글은 아슬아슬하다.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이 그렇고 바쿠닌의 법정 최후진술 [혁명의 불길은 막을 수 없다]가 그렇다. 그 글을 읽는 사람은 그들의 달변에 제압되어 옴짝달싹할 수 없고 그들의 능변에 선동되어 포로가 되고 만다.
"발이 권세 있는 집의 대문에 이르면 걸음이 갑자기 얼어붙고, 높은 사람에게 절하려면 몸이 기둥처럼 뻣뻣해진다"고 자평했던 교산 허균(1569~1618)은 혁명가의 기질을 타고났다. 그가 쉰 살의 나이에 덕을 잃은 군주를 향해 반역의 기치를 치켜들었다가 발각되어 저잣거리에서 효수된 것은 다른 세상은 꿈꾸었던 혁명가의 논리적 귀결이었을지도 모른다. 열여덟 살의 나이에 요절한 친구 금각의 묘비명처럼 그의 뜻은 멀었으되 삶이 짧았다.
허균이 남긴 글 가운데 혁명가의 면모가 가장 뚜렷한 것은 [호민론(豪民論)]이다. 봉건적 질서가 엄정했던 시대에 "푸줏간 안에 자취를 감추고 몰래 다른 마음을 키우며" 때를 기다리는 호민의 혁명적 에너지를 간파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시대와 불화하며 뜻이 꺾이고 만 그는 어쩌면 스스로 호민이 되려 했는지도 모른다. 봉건 권력이 허균의 불온한 선동을 후대에 철저히 매장시킨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혁명가 허균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이 책은 그리 쓸모가 없을지 모르겠다. 허균의 소품문(小品文)을 모아 엮고 옮긴 이 책은 오거서(五車書)의 독서가, 죽은 아내를 애틋하게 그리는 남편, 술을 빚고 벗을 기다리는 풍류객으로서 허균의 일상적 자취가 뚜렷하다. 허균의 방대한 저작 가운데 추려 뽑은 글이지만, 승려 일연이 의상의 글을 일러 말한 것처럼 한 점의 고기로 온 솥의 맛을 알 수 있을 법하다.
불우했던 생애 탓이었을까. 탁월한 재사로서 문명을 떨쳤지만 끝내 세상을 등져야만 했던 그가 몰입했던 것은 책이었다. 이 책에는 그의 독서 편력이나 책에 대한 열망이 곳곳에 어른거린다. "나는 세상에 곤액을 당하여 관직생활은 오히려 쓸쓸하니 장차 벼슬을 버리고 영동으로 돌아가서 만 권 책 속에 좀벌레가 되어 남은 삶을 마치려 한다"고 한 대목에서 그의 소박한 바람을 엿볼 수 있다.
쓸쓸한 삶을 견디게 하는 것은 술과 벗이다. 이 책의 압권은 벗에게 술 한잔 하러 오라고 청하는 척독(편지)이다. 한창 익은 차좁쌀로 빚은 술 걸러놓고 벗을 기다려 잉어 회를 치는 허균의 마음은 이미 섬돌 계단을 넘어서 있다. 이여인에게 쓴 편지에서 "자네 집 사자 같은 늙은 아내가 반드시 고함을 지르면서 자네 얼굴을 고양이 면상으로 만들 테지만, 늙었다고 해서 두려워하거나 움츠러들어서는 아니 될 것이야"라며 벗을 꼬드기는 장면은 입을 벌어지게 한다.
주머니에 든 송곳처럼 아무리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는 게 사람의 기질이다. 허균의 말마따나 본성은 진실로 길들이기 어려운 법이다. 그의 날카로운 비판의식은 이 책 곳곳에서 날을 세우고 있다.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소인배들이 편을 갈라 어진 선비를 배척하고, 국가의 법도는 꿀벌들의 법도에도 미치지 못한다. 범인은 큰 골짜기의 용을 고삐와 쇠사슬로 묶어두려 한다. 그러니 뜻 있는 선비라면 굴원처럼 돌과 모래를 끌어안고 싶어할 것이다.
"문장은 갈고리질하고 구절마다 가시를 쳐서 험벽한 수사로 공교함을 다투는" 세상에서 허균의 문장은 간결한 듯, 웅혼한 듯, 분방한 듯, 대체로 당대의 일상어를 변주시켜 우아하고 참된 것을 만들었으니 이른바 쇠를 담금질해서 황금을 만드는 격이다. 그의 글은 두드리면 쟁쟁 쇳소리가 난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대장부의 생애는 관 뚜껑을 덮어야 끝난다고 했던 허균의 선언이 오래도록 입 속에 맴돌 것이다. 허균 지음, 김풍기 옮김, 태학사 7,000원.
박천홍〈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