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의선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인터넷 규제 미디어법 개정에 부쳐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그만큼 현실에 대한 해석도, 대안책 제시도 다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현실 문제에 대한 정책을 세울 때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는 기본 원칙과 논리는 있다.
인터넷 규제에 대한 논쟁은 소위 ‘최진실 자살 사건’으로 대표되는 인터넷 악플에 대한 법적 조치로서 여당인 한나라당이 사이버 모욕죄를 신설하겠다고 밝힘으로써 시작되었다. 한나라당이 발의한 사이버 모욕죄의 주요 내용은 친고죄인 모욕죄를 반의사불벌죄로 바꾸고, 정보통신제공 사업자에게 임시조처, 삭제 등 악플에 대처하는 일정한 의무를 지게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이나 일부 시민단체는 사이버 모욕죄를 소위 MB 악법의 하나로 간주하고 격렬히 반대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은 최근의 미네르바 사건으로 그대로 연장되어 첨예한 정책 충돌을 낳고 있다.
이처럼 특정 이슈에 대해 사회 구성원간에 대립각이 세워질 때, 바람직한 해결책은 어떻게 찾아 나갈 수 있을까? 일단, 어떠한 선택이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가를 판단하기 위한 치밀한 논리적, 학술적 분석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어떤 안이 일부 사회 구성원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안이 학술적 논리적 근거나 사회적 상식 상규에 배치된다면 그 정당성은 인정받기가 어렵다. 그러나 양측의 논리가 모두 나름대로의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되지만 사회적 조율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민주주의 원칙에 의거 다수결로 처리하는 것이 통례이다.
인터넷 파급력 무한, 그에 따른 책임도 커
인터넷이란 공간은 분명 무한한 표현의 자유를 구가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비록 인터넷이 다른 기존 매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누구나 참여하고 논의할 수 있는 숙의민주주의가 가능한 곳이긴 하지만, 남의 인격권을 훼손하고 사회를 혼란에 빠트리는 곳이 되어선 안 된다. 그렇다고 인터넷이란 공간을 지나치게 통제하여 인터넷이 가지고 있는 논의 기능을 위축시켜서도 안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터넷과 같은 사이버 공간은 분명 기존 오프라인 매체와는 구별되는 특성이 있다. 무엇보다도 인터넷은 다른 매체에 비해 익명성이 잘 보장되고 쌍방향적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며, 전세계적으로 망이 연결되어 있어서 그 파급 효과가 엄청나게 크다. 그렇기 때문에 인터넷 상에서 일어나는 각종 불법 행위는 그 처벌이 오프라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겁다.
사이버 모욕죄는 형법상 모욕죄에 비해 그 처벌이 무겁다. 그리고 그 당위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문제는, 친고죄를 반의사불벌죄로 바꾸었을 때 야기될 수 있는 효과에 대한 충분한 고찰과 대책이다. 일단, 친고죄를 반의사불벌죄로 바꾸었을 경우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악플러들이 함부로 타인을 비방하는 행위가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라는 점이다. 반의사불벌죄 하에서는, 피해자가 자신에 대한 악플을 미처 보지 못해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타인이 이를 적발하고 신고할 경우 그 인격권을 상당 수준 보호 받을 수 있게 된다.
반면 이러한 조치로 가장 우려되는 점은 공인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 형법 제311조는 모욕죄를 적시하고 있다. 모욕죄는 명예훼손과 달리, 구체적 사실이나 허위 사실의 공표가 아닐지라도 공연히 남을 조롱하고 악평을 가하는 등 자기의 추상적 판단을 발표하여 타인의 사회적 지위를 경멸할 경우 위법성이 구성된다. 비록 상대방이 공인이라 할지라도, 사회적 상규에 따라 충분히 공감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 비방은 모욕죄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공인에 대한 비판이 위축될 수 있는 소지가 분명 있다 하겠다.
허위사실 기초한 비방 세계 어디서도 인정 안해
그러면 공인은 공익적 요소가 부재한 비방이나 조롱을 감수해야 하는 것일까? 명예훼손 등 개인적 인격권과 관련된 우리 법의 특성을 살펴볼 때, 공익적 요소가 부재한 비방이나 조롱, 더욱이 허위의 사실이나 진실이라고 믿을만한 정황이 부족한 정보들에 기초한 비방이나 조롱은 일정 수준 억제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아무리 대중의 눈에 노출되어 있는 공인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한 인간으로서 존중 받아야 할 천부적 인격권을 고려할 때, 명백한 허위 사실에 기초한 비방이나 누가 보아도 상식을 벗어나는 일탈적인 표현은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한 마디로 사회적 상규 외 공익적 목적 하에 진행된 공인에 대한 일정 수준의 모욕은 모욕의 위법성 조각 사유로서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반면 공익적 요소가 전혀 부재한 모욕이나 비방은 피해자가 누구이든 적정 범위 내에서 억제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유념해야 할 것은, 아무리 공익적 목적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허위의 사실에 기초한 공익 추구는 세계 어느 법률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사실이라고 믿을만한 정황적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 한, 악의에 찬 허위적 사실의 유포는 그것이 비록 공익적 목표를 추구한다고 할지라도 표현의 자유로서 인정하기 어렵다. 이런 면에서 미네르바 사건은 단순히 자신의 의견이나 분석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분명 허위의 사실을 유포한 경우이므로 그에 해당하는 책임을 묻는 것은 법리상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포털사업자, 사익 위해 이용자 불법행위 방조해선 안돼
일정 수준 이상의 편집 기능을 가지고 있는 포탈사업자라면, 자신의 공간에 오고 가는 많은 메시지가 불법적인 기능을 하지 않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해야 한다. 사이버 법체계 논리상 포탈사업자에게 모든 책임을 부과할 수는 없지만, 포탈사업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불법적인 행위를 방조하거나 하는 등의 행위는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법규에 의존하기 앞서, 중요한 것은 그 나라의 문화 의식 수준이 아닐까 생각한다. 악의적인 악플러가 인터넷 공간에서 발을 붙이기 어렵고, 상식적이고도 수준 높은 논쟁이 주도하는 토론 문화가 확산될 때, 우리 인터넷은 진정 숙의민주주의 공간으로서 자리매김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반대를 위한 반대”에 몰입하기 보다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우리 사회의 진정한 발전을 꾀하기 위한 합리적 접합점을 찾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경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