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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런 짓을 했다면 당장 성을 갈겠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부계(父系)로부터 물려받은 성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 불변의 진리로 통해 왔습니다. 수천 년 동안 지켜져 왔고 법으로까지 규정되어 온 성(姓) 불변의 관습이 어느 날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2005년 3월 개정된 민법 제 781조 6항이 지난해부터 시행된 결과입니다.
법원이 지난 한 해 동안 자녀의 성과 본을 바꿔달라는 청구를 받아들인 것은 1만 2582건이나 됐다고 합니다. 대부분 재혼한 여성이 자녀의 성을 새 남편의 성을 따르게 한 경우이고, 혼자 사는 여성이 자녀의 성을 자신의 성과 같게 바꾼 사례도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혼인신고 때 부모가 합의하면 어머니의 성과 본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게 법무부의 유권해석입니다. 다만 자녀의 성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을 함께 사용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누구의 성을 땄는지도 모를 성이 둘인 사람들이 미디어에 버젓이 등장하는 판이니 ‘이부지자(二夫之子)’라는 말이 욕이 안 될 지도 모를 일입니다.
성을 갈아도 양심과 명예가 더럽혀지지 않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한 가족 한 핏줄이면서도 아버지 성과 어머니 성을 따로 사용하는 형제자매들이 공존하는 사회가 되었으니 나이 든 세대들은 여간 혼란스럽지 않을 것입니다. 절대 가치가 사라지고 의식의 치환도 쉽지 않으니 말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관념이 뒤집혀지는 현상이 자주 눈에 띕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속설도 그 중 하나입니다. 스님들이 머리를 깎을 때에는 남이 칼로 배코를 쳐 주는 것이 상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혼자서도 일회용 면도기로 삭발이 가능해졌으니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은 어불성설이 되어 버렸습니다.
‘민의의 전당’으로 이름 붙여진 국회도 의미가 크게 퇴색했습니다. 국가의 안보와 국민의 안녕을 위한 법을 제정하는 기관인 줄 알았는데, ‘악법’을 만들고 난투극만 벌이는 격투기장으로 착각하기 십상입니다. 학생들 간에 싸움을 하면 “너희가 국회의원이냐?” “여기가 국회인 줄 아나, 왜 싸워?”하는 식으로 빗댄다니 쓴 웃음이 나올 뿐입니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은 옛말이 되어 버렸습니다. 50여 년 전 전 국민의 80%를 차지하던 농업종사자는 현재 그의 10분의 1로 줄어들었습니다. 자녀 교육과 혼ㆍ상례 비용을 쌀농사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채소 농사도 가축 사육도 수입산에 밀려 타산이 맞지 않습니다. 오늘날 농민은 거의 빚만 안고 있는 천하의 소본(小本)입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법도 없습니다. 대부분 농가에서 심는 무와 배추는 씨를 채취해 다음 해에 심어도 제대로 결실이 되지 않습니다. 수입 종자를 새로 사서 뿌려야 합니다. 종자개량 기술이 뒤떨어져서입니다. 이름 있는 종묘 회사들이 외국인 손에 넘어간 결과입니다.
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가 나는 것 같습니다. 고가의 그림을 준 사람이 없는데도 받은 사람은 있으니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분명 대가성이 없고 이권 개입도 안했다는데 수십 억 원의 뭉칫돈이 오갔다는 것도 알 길이 없습니다. 고기 맛을 알면 벽에 빈대가 안 남는다는 말이 국세청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규범과 원칙이 갑작스레 변하면 사람들은 불안해집니다. 미래가 불확실해지고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 지 모르면 일탈 현상이 늘어납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욕구 때문입니다. 그래서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와 용기를 심어주는 지도자가 더욱 필요한 시점입니다.
필자소개
김홍묵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에 몸담았다. 이후 (주)청구 상무이사,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주)화진 전무이사 등을 역임했다. 언론사 정부기관 기업체 등을 거치는 동안 사회병리 현상과 복지분야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기사와 기고문을 써왔으며 저서로는 한국인의 악습과 사회구조적 문제를 다룬 '한국인 진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