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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가 보지 못했지만 미국 중서부 사우스 다코타(South Dakota)주 블랙 힐스(Black Hills) 산맥의 산봉우리에는 러시모어 산(Mount Rushmore)의 네 대통령 얼굴과, 수우족 추장이었던 인디언 전사(戰士)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ㆍ1842~1877)의 얼굴 등 대조적인 큰 바위 얼굴 두 가지가 있습니다.
러시모어에 새겨진 얼굴은 조지 워싱턴(초대), 토머스 제퍼슨(3대), 에이브러햄 링컨(1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26대) 등 미국을 만들고 융성케 한 4명의 대통령입니다. 건국 성장 보존 발전을 상징하는 이들의 모습은 1927년부터 1941년까지 14년에 걸친 작업 끝에 완성됐습니다. 러시모어는 미국의 자부심과 긍지가 넘치는 ‘민주주의 전당’입니다.
그곳에서 27km 떨어진 곳에 있는 크레이지 호스는 미완성입니다. 19세기 후반 백인과 치열한 전쟁을 벌인 인디언 영웅 크레이지 호스는 원주민이었던 아메리카 인디언의 자존심, 백인에 대한 처절한 저항정신을 담아 인디언의 잃어버린 역사를 재생하는 얼굴입니다.
두 현장은 미국 역사의 명암, 문명과 야만의 대립을 잘 알게 해준다는 점에서 극단적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큰 바위 얼굴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서로 닮았습니다. 그것은 러시모어 산의 전망대 아래 박물관에 새겨진 글귀 그대로 ‘실현 불가능한 꿈의 결실’입니다.
네 대통령의 얼굴을 조각한 거츤 보글럼(Gutzon Borglumㆍ1867~1941)은 프랑스에 건너가 로댕의 밑에서 조각을 배운 당대 제일의 조각가였답니다. 서부 개척사의 주인공을 새기려는 사우스 다코타 주의 초청을 받아들여 1924년 블랙 힐스에 온 그는 미국인 전체가 공유할 수 있는 ‘국가적 상징인물, 역사의 영웅’을 새기자고 수정 제의했습니다. 제의가 받아들여지자 러시모어를 점 찍고 1927년 8월 착공식을 했습니다. 당시 이미 60세였던 보글럼은 “위대한 지도자들의 말과 얼굴을 이 곳의 하늘 가까이 높이 새기자. 그 기록은 바람과 비만이 닳게 할 뿐 영원할 것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완공을 보지 못한 채 1941년 3월 숨졌고, 그를 도왔던 아들 링컨 보글럼이 작업을 계승해 그 해 10월 공사를 마무리했습니다. 경제공황으로 자금 조달이 어려워 여러 번 중단됐던 대역사는 마침내 끝났지만, 2차대전의 소용돌이에 묻혀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공식 제막식은 그로부터 50년 뒤인 1991년 6월 조지 부시 대통령 때 이루어졌습니다. 아들 링컨 보글럼도 1986년에 사망해 제막식을 보지 못했습니다.
러시모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크레이지 호스도 대를 이어 제작되고 있습니다. 폴란드계 조각가 코자크 지올코브스키(Korczak Ziolkowskiㆍ1908∼1982)는 1939년 수우족의 추장으로부터 “인디언에게도 백인처럼 위대한 영웅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보글럼의 조수로 잠시 일한 경력도 있는 지올코브스키는 그로부터 8년 만에 이 작업에 일생을 걸기로 결심했습니다. 그의 생일과 크레이지 호스의 사망일이 같은 것도 계시와 같은 인연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1947년 5월 블랙 힐스에 온 그는 산 전체를 깨고 깎아 크레이지 호스를 새기기로 하고, 1948년 6월 3일 첫 발파작업을 했습니다. 말을 탄 인디언 전사가 손가락으로 먼 곳을 가리키는 조각상은 높이 172m 폭 195m 규모로 만들어질 예정입니다. 얼굴 모습이 드러나는 데만 50년이 걸렸지만 언제 완공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연방정부의 재정지원을 거절한 그는 자금난과 ‘인디언을 위해 일하는 백인’에 대한 멸시에 시달리면서도 작업을 계속했고, 1982년 10월 사망할 때까지 35년간 740만 톤의 돌을 깼다고 합니다. 그의 사후에는 부인과 10명의 자녀가 물려받아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데, 착공 50년 만인 1998년 6월, 얼굴상을 완공하고 제막식을 했습니다. 지금은 먼 곳을 가리키는 크레이지 호스의 왼 팔과 말의 머리를 만드는 중입니다. 올해에도 5월 3일 코르차크 데이(그가 1947년 이곳에 온 날), 6월 6~7일 크레이지 호스 폭스마치(하이킹) 등 여러 행사가 잇따라 열린다고 합니다.
크레이지 호스는 1876년 수우 족을 이끌고 리틀 빅 혼 전투에서 조지 커스터(George Custer) 중령의 미 제 7기병대를 궤멸시킨 영웅이지만 대대적 보복작전으로 인해 그 다음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수우족은 1866ㆍ68년 백인들과의 두 차례 전쟁에서 이긴 대가로 블랙 힐스를 그들의 땅으로 인정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일대에서 금이 발견되자 미 정부는 군대를 보내 수우족을 몰아내려 했고, 이에 맞서 싸운 것이 리틀 빅 혼 전투입니다.
두 곳의 큰 바위 얼굴을 보며 저절로 생각하게 되는 것은 愚公移山(우공이산)이라는 중국 고사와 미국 작가 너데니엘 호손(1804~1864)의 소설 <큰 바위 얼굴>입니다. 우공이산의 고사는 끈질긴 집념과 열정의 중요함을 말해 줍니다. 사람들은 아흔 살에 가까운 우공이 집 앞의 높은 산을 깎아 없애기로 하고 흙을 파 먼 바다에 버리는 것을 보고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우공은 “내가 죽으면 아들 손자가 하고, 또 그 후손들이 하면 언젠가는 산이 평평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공의 정성에 감동한 옥황상제는 산을 다른 곳으로 옮겨 주었다고 합니다.
중학교인지 고등학교인지 교과서에 실려 있었던 <큰 바위 얼굴>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소설입니다. 언행이 일치하고 선행과 사랑이 생활 속에 용해된 사람이 진정 훌륭한 인물이라는 것, 누구든 노력하면 큰 바위 얼굴처럼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은, 일종의 교양소설입니다.
주인공 어니스트가 사는 마을에는 이 근방에서 태어나는 아이가 당대의 가장 위대하고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이며 그가 크면 큰 바위 얼굴과 용모가 똑같게 될 것이라는 전설이 있었습니다. 이곳에 살았던 인디언의 조상들은 산간의 냇물과 나무 위를 지나가는 바람소리를 통해 그 전설을 들었다고 합니다. 큰 바위 얼굴의 모습은 고상했고, 표정은 장엄하고 부드러워 인류를 사랑으로 감싸고도 더 여유가 있는 듯 넓고 따뜻한 마음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 얼굴과 닮은 사람으로 차례로 등장하는 것은 개더골드라는 천박한 부자, 올드 블러드 앤드 선더라는 준엄한 군인, 올드 스토니 휘즈라는 정치인이었지만 그들은 모두 숭고하고 위대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 이어 이곳에 찾아온 시인이 큰 바위 얼굴이기를 바랐던 어니스트는 다시 한 번 실망을 하게 됩니다. 그런 어니스트에게 큰 바위 얼굴이 해 준 말은 “나는 너보다 더 오래 기다렸다. 걱정하지 말아라. 그 사람은 올 것이다”였습니다.
그런데 그 시인은 연설 중인 어니스트를 가리키며 “보시오, 보시오. 어니스트가 큰 바위 얼굴과 똑같습니다”하고 외칩니다. 언젠가 큰 바위 얼굴과 같은 사람이 나올 것이라는 예언은 마침내 실현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니스트는 여전히 자신보다 더 현명하고 선량한 사람이 나타나기를 바라면서 집으로 돌아갑니다. 바로 이 마지막 문장이 나는 참 좋습니다. ‘But Ernest, having finished what he had to say, took the poet’s arm, and walked slowly homeward, still hoping that some wiser and better man than himself would by and by appear, bearing a resemblance to the Great Stone Face.’
큰 노력이든 작은 노력이든, 큰 성취든 작은 성취든 인간이 이루려 하거나 이룩한 것은 다 아름답습니다. 산과 돌을 깎아 큰 바위 얼굴을 만드는 것은 집념과 끈기입니다. 자신을 큰 바위 얼굴처럼 만드는 것은 따뜻한 마음과 겸허함입니다. 소설에는 ‘이 겸손한 사람이 살아 있음으로 해서 세상은 나날이 더 좋아졌다’는 멋진 표현이 나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