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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사회가 ‘미네르바’라는 사람의 인터넷 글로 시끄럽습니다. 미국 투자증권은행인 리만 브라더스의 파산이나 환율 변동을 맞혀 신통력을 보였다는 그는 ‘인터넷 경제대통령’이라는 칭찬과 함께 기획재정부 장관 감이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최근 구속된 그는 31세의 박 아무개 씨로 2년제 대학졸업자이지만 IMF 외환위기로 친구의 부모님이 자살한 이후 독학으로 경제원론을 독파하며 열심히 경제를 공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글에서 미네르바는 자신이 6.25를 직접 겪고 32세에 도미 유학했으며 ‘월가의 파생상품을 설계’한 경력이 있는 엘리트라고 했습니다. ‘얼마 안 남은 늙은이’라는 표현에서 는 미네르바가 60대 이상인 것으로 생각하게 했지요. 올해가 한국전쟁 발발 59주년이니까요. 도대체 구속된 오프라인의 젊은이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그의 글을 보면 ‘조국의 등에 칼을 꽂은… 양키’라는 표현도 보이고 ‘악마의 저주’ ‘저주 받은 굿판’이라는 386류의 자극적인 단어도 보입니다. 검찰에서 40여분 만에 2009경제전망을 16절지 2장에 미끈하게 썼다는 기사도 있습니다. 그는 월간지 인터뷰는 안 했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복수의 미네르바 ‘짝퉁’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게 합니다.
필자는 그의 글을 경제일간지와 월간지 사이트에서 접했습니다. 그가 술에 취해 마지막에 썼다는 글을 읽어보았죠. ‘죄송하고 미안하다’는 말이 수도 없이 나오는데 도대체 그가 맡은 역할이 뭐였길래 죄송하고 미안하다는 것인지 짐작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 다른 미네르바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는 글의 신뢰도를 높이고 조회수를 올리기 위해 자신을 막판에 화려한 경력의 ‘명품’으로 분식한 셈이죠.
약 280건의 글을 썼다는 미네르바에 대해 외국의 유력 경제지들은 수천만 건에 달하는 조회수를 지적하면서 그의 구속을 관심 있게 보도했습니다. 프랑스에 본부를 둔 ‘국경없는기자회(RSF)’는 그의 석방을 촉구했습니다. 작년 말 이 단체는 탈북자들이 만들어 대북방송을 하는 자유북한방송에 ‘2008 올해의 매체상’을 수여한 바 있죠.
정부는 미네르바가 외신으로 보도된 ‘달러 사재기 자제요청 공문’이라는 허위사실 유포로 환율 방어에 20억 달러를 썼다고 비판했습니다. 미네르바의 글을 공식 반박했던 정부는 그가 20억 달러의 외환손실을 끼쳤다고 주장하지만 그의 글이 외환시장에 어떻게 작용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의 글은 호시탐탐 한국을 깎아 내리려는 외환투기 세력에게는 호재가 되었겠지요. 그렇지만 날고 기는 외환 딜러들이 그의 말대로 ‘일개 블로거일 뿐인’ 미네르바의 글로 쉽사리 ‘베팅’하리라고는 믿어지지 않는군요.
지금 우리 사회에 미네르바에 대한 어떤 종류의 열광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심각한 경제난에 올곧은 목소리를 못 내는 기성 언론매체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사회가 어지러울수록 신흥종교가 발흥하듯이, 경제가 어지러울수록 쾌도난마의 해법을 갈구하는 네티즌들이 경제의 우상을 만들어간 것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보이지 않는 많은 손들이 작용했을지도 모를 테지만….
그의 구속에 대해 정치권은 또 두 패로 갈라져 표현의 책임과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는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자유와 책임은 둘 다 중요하죠. 그러나 꼭 구속했어야 했느냐는 주장이 여당 일각에서도 나옵니다. 미네르바 자신은 온라인에 쓴 글이 수갑과 포승줄에 묶여 변호인을 면담해야 하는 오프라인으로 확대될 줄은 몰랐다며 경악하고 있다죠.
미네르바의 정확한 의도는 누구도 모릅니다. 스스로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소박한 주장이 경제를 배운 동기라는 말도 있습니다. 물가가 올라갈 테니까 6개월치 생필품을 사두라는 순진한 주장이 그런 셈이지만 지난 연말에 물가는 내렸습니다. 한국경제를 걱정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글을 썼다고 자신은 굳게 믿겠죠.
그런데 왜 ‘미네르바’일까요? 듣기에도 생소한 ‘미네르바’는 로마신화에서 지혜의 여신이라고 합니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기 시작할 무렵에야 날기 시작한다”고 말했답니다. 역사가들이나 철학자들은 잘난 척 하지만 세상의 상황 변화가 한참 진행되어 끝날 무렵이나 돼야 뒤늦게 뭔가 알았다고 부산 떠는 의미라고 합니다.
미네르바는 결국 이 세상에 일찍 경고하고 싶어 글을 썼다는 말이 됩니다. 그를 예언자라고 찬양하는 사람도 있는데 로이터 통신은 그를 ‘금융시장예언자(financial market prophet)’라고 썼습니다.
수사당국은 IP추적으로 그를 밝혀냈습니다. ‘미네르바’라는 이름처럼 외견상 익명성이 보장되는 사이버 세계의 글은 직관적이고 감성적인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네티즌들은 ‘모든 시민은 기자’라는 환상 속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지도 모르지만 실정법에는 긴장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더욱이 경제가 외환위기 때처럼 어려운데 여야는 늘 치고 받는 당쟁(黨爭)으로 경제의 발목을 잡는 이 나라에서는 네티즌이나 누구나 정신 없이 아우성칠 게 아니라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풍토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특히 정부는 경제난의 가장 큰 책임이 헤매는 자신들에게 먼저 있음을 깨닫고 리더십 있는 경제난국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이번 미네르바 같은 제2, 제3의 불행한 경제 ‘예언자’들을 안 나오도록 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기자로 입사, 각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의 개량을 지고의 가치로 삼아 보도기사와 칼럼을 써왔다. 그는 동구권의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을 역임했으며 신문사 웹사이트 구축과 운영에서 체득한 뉴미디어 분야에서 일가견이 있다. 저서로는 병인양요 시대를 그린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