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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친구 두 명이 폐암으로 확진되었습니다. 두 명 다 골초였습니다. 한 명은 직장도 광화문 근처인 데다가 대학도 동창이라서 점심시간에 곧잘 만났습니다. 그는 틈만 나면 담배를 입에 물었기 때문에 연기를 싫어하는 나는 늘 그에게 줄담배를 끊으라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가족 말고 누가 너에게 담배를 끊으라고 하던?”하면서 금연하도록 구박했지만 끊지 못했죠. 결국 정기 건강진단에서 이상소견이 나와 대학병원 두 곳의 확진으로 수술 받았다고 합니다. 다행히 아주 초기라서 겨드랑이를 째는 내시경적 수술을 했다고 합니다. 한 명은 휴대폰도 없는 아날로그형 인간입니다. 안부를 묻는 대신에 그저 쾌차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외과 수술의 공포는 전신마취를 받아본 사람이 아니면 모르죠. 마취과 의사나 외과 의사들이 내미는 여러 쪽의 서약서 종이들은 쉽게 말하자면 ‘수술이 만에 하나 잘못돼도 이의 달지 않기’라고 요약할 수 있지요. 수술실 문을 지나갈 때 이 세상과의 이별은 아닌가 하여 엄습하는 공포는 요즘 대학병원 드라마에서 외과 의사 자신이 맹장염 수술 받으면서도 벌벌 떠는 장면이 말해주죠.
최근 여성암 사망률 1위가 폐암이라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여성 자신들은 유방암이 여성 암 사망 1위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여성들에겐 간접흡연 피해자가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주방의 조리 기름 연기도 해롭다고 합니다.
어깨를 스칠 정도로 좁은 도심의 골목길에 매캐한 담배 연기는 기분을 잡치게 만들죠. 푸른 매연을 뿜으며 좁은 인도 위를 질주하는 배달 오토바이만큼 혐오스럽습니다. 이런 풍경이 이 나라에서 사라질 날은 언제일지.
서울시가 버스정류장 주변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한다고 한참 설레발을 치더니 까마귀 고기를 먹은 듯이 잠잠해졌습니다. 과잉 PR행정이죠. 버스정류장에는 여전히 기다리는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고 금연표지판도 안보입니다. 10미터를 벗어나도 담배 연기 냄새가 느껴집니다.
큰 건물도 마찬가지죠. 어느 주상복합건물 화장실에는 ‘절대흡연금지’라는 표어와 함께 ‘적발되면 건물 주인이 과태료를 물게 됩니다’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습니다. 그러나 담배 냄새는 여전하죠. 또 어떤 화장실엔 보건소의 금연 표지를 비웃는 재떨이가 달려 있습니다. 금연자는 피우지 말고, 흡연자는 피우란 말인가요? 뒤죽박죽입니다.
뉴욕이나 동경은 물론 부탄왕국도 실시하는 강력한 금연정책을 우리는 왜 못합니까. 우리가 그들보다 후진국이기 때문인가요? 그러고서도 ‘수명3년 연장’같은 허황된 구호나 외치실 작정인지 정말 한심합니다.
서울의 미국계 할인 양판점에 경고가 붙어있습니다. ‘담배를 피우면 화재경보가 울릴 수 있습니다.’ 어느 대학병원 심혈관 센터에도 그런 경고문이 게시되어 있었습니다. 흡연이 심혈관 환자에게 얼마나 나쁘면 그런 경고문을 붙여놓았을까요?
우리나라는 언제까지 발암요인을 사회 곳곳에 방치하려는 것인지 걱정입니다. 그러고도 건강보험 적자타령인가요? 치료를 안 해주려면 예방이라도 철저하게 해서 국민건강을 보호해야 합니다. 뭐 하나 선진국 보다 앞서가는 게 있어야지. 종부세 같은 세계에 희한한 세제나 유지한다고 이 나라가 선진국이 된답디까?
최근 아소 타로(麻生太郞) 일본 총리는 "나이 67,68세가 되어 동창회에 가면 골골해 병원을 전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젊을 때 매우 건강했지만 지금은 내가 이런 사람들보다 의료비가 적게 나온다. 나는 아침에 걷고 무엇인가 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죠. 아소 총리는 또 "노력해서 건강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내는 세금을 노력하지 않아 병든 사람들이 축내고 있다"고 비난했다고 합니다. 아소의 발언은 질병을 환자 개인의 잘못이라고 말한 것으로 인식되면서 큰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예방에 더욱 힘을 쓰면 의료비 전체를 줄일 수 있다는 취지"라고 해명했습니다.
아소 총리의 말을 뒤집어보면 건강 문제는 개인의 노력도 있겠지만 국가의 건강 환경조성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우쳐줍니다. 병에 걸리고 싶은 사람은 누구도 없죠. 그러니 국가는 국민들이 병에 걸린 뒤에 사회보장 운운할 게 아니라 지리적 공간을 통제하는 주체로서 국민들이 늘 건강하도록 온갖 예방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금연문제 역시 금연 환경을 정교하게 조성하면 흡연자가 크게 줄어들어 개인과 가정, 사회에 미치는 암의 불행을 훨씬 축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기자로 입사, 각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의 개량을 지고의 가치로 삼아 보도기사와 칼럼을 써왔다. 그는 동구권의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을 역임했으며 신문사 웹사이트 구축과 운영에서 체득한 뉴미디어 분야에서 일가견이 있다. 저서로는 병인양요 시대를 그린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