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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번 국도를 가다가 강화대교를 건너기 전에 오른쪽 산 정상에 올라서면 북한 땅이 빤히 건너다 보입니다. 김포시 월곶면에 소재한 해발 376미터의 문수산입니다. 이 산에서 멀지 않은 고막리 야산 등지에서 11월20일 북한자유운동연합과 납북자가족모임이 전단(삐라) 10만장을 풍선에 달아 북한으로 날려보냈습니다.
북한과 우리 좌파 정당, 심지어 우파 정당의 좌파인사가 반발하고 우리 통일부도 매우 못마땅해 하는 가운데 날려 보낸 것입니다. 북한자유운동연합은 약 5년 동안 900만장의 전단을 북한에 보냈다고 합니다.
때로는 선박에서, 때로는 육지에서 날린 전단을 많은 탈북자들이 북한 땅에서 보았다고 합니다. 부시 미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격려를 받은 박상학 북한자유운동연합 대표는 “북한에 영향을 미쳤던 전방의 전광판도, KBS 사회교육방송도 중단됐다. 지금 북한 주민은 미국의소리(VOA)방송과 자유아시아라디오(RFA)를 듣는다. 삐라를 뿌리는 게 아주 잘한 것이라고 북한 내부 소문을 접했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그러나 좌파진영의 박지원 의원 같은 분은 “최악의 사태가 오기 전에 대북 삐라를 단속하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북한이 신성시하는 김정일 위원장을 건드리는 전단 살포를 정부가 중지시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반면 보수우익진영은 변하지 않는 북한에 자유와 변화의 바람을 넣기 위해 ‘진실의 촛불’인 전단을 날려보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자유선진당의 이회창 총재 같은 분은 “전단 살포가 양심과 표현의 자유”라고 말합니다. 대북 전단 보내기 논란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보수는 진보적이고 자칭 진보는 보수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독일 통일이 쉽게 된 것은 동독 주민들이 서독의 방송에 언제라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니다. 세상과 서독의 실상에 정통해 있었기 때문에 이질감이 없었고 체제의 변화를 쉽게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조선 왕조에서 식민지를 거쳐 공산주의 폐쇄 독재체제로 직행한 북한 주민들이 외부의 정보 없이 어떻게 보다 넓은 세상을 알며 그들이 자유롭게 살 날을 어떻게 달리 오게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가만히 있는다고 풀릴까요?
2000년의 남북정상회담으로부터 10년이 가까워지도록 일반 국민들이 느끼는 통일환경이나 남북화해는 별 진전이 없어 보입니다. 북한은 10년간 약 5억 달러의 수입을 올린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같이 돈 생기는 일에는 관심이 있고 그렇지 못한 일이면 인도적인 사업이라도 별로라는 느낌을 받죠. 1회성 이벤트 같던 금강산 남북이산가족 상봉마저 지금은 끊겼습니다. 독일의 예를 보더라도 북한 동포가 남쪽으로 많이 오게 하거나 그게 안되면 양쪽 경계선에 위치한 판문점 같은 곳에서 만나도록 하는 것이 백번 타당한 일이었습니다.
우리의 영역을 벗어나서 폐쇄된 북쪽으로 간다는 것은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죠. 물론 가는 것도, 오는 것도 그들의 변덕스런 시혜(?)에 좌우되는 일이기는 하죠.
전단보내기에 반발하는 분들이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전단을 보내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그들은 정부 여당이 아니라 바로 북한의 실상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체험한 탈북자들입니다.
박상학 씨는 대북 전단보내기에 온 가족이 매달리고 있습니다. 수전 솔티의 말에 따르면 탈북자는 50만명, 그 중 1만5,000명이 한국에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햇님이 북풍의 외투를 벗긴 햇볕정책을, 기대에 부풀어 한동안 금과옥조로 떠받들었습니다. 그것은 우화일 뿐이었습니다. 북한의 금강산 관광 주부살해 사건이 상징입니다. 입으로는 ‘민족 끼리’라고 외치면서 6자 회담을 열어야 하는 판이니 뭘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요?
정권이 바뀐다고 외교관계가 바뀌는 나라는 없습니다. 쌓아올린 기초관계가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남북관계는 걸핏하면 모래성처럼 무너져 제로 베이스가 되는 꼴입니다.
그 동안 정부 예산을 쓰며 남북접촉을 가졌던 사람들, 때로는 민심의 거센 역풍을 무시하고 평양으로 달려갔던 사람들은 요즘 남북간의 화해를 위해 무슨 일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죠. 상황이 꼬였을 때에는 과거에 남북관계에서 한자리 했던 사람들에게 사태를 풀도록 의무를 주는 것도 방법입니다. 금강산 관광 주부살해 사건에 대한 북한의 사과를 받는 일 같은 것이죠. 이런 정도의 문제를 풀고 난 다음에 삐라가 어떠니 저떠니 입을 여는 게 타당하지 않을까요.
“여기가 평양이냐? 서울이냐? 우리는 사실과 진실을 위해,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 이라며 전단을 계속 보낼 것을 다짐했던 북한자유운동연합은 이날 풍선을 날려보낸 뒤에 ‘통일부의 엄청난 자제 요청’ 에 부딪혔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자유운동연합이 앞으로 어떻게 나갈까요?
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기자로 입사, 각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의 개량을 지고의 가치로 삼아 보도기사와 칼럼을 써왔다. 그는 동구권의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을 역임했으며 신문사 웹사이트 구축과 운영에서 체득한 뉴미디어 분야에서 일가견이 있다. 저서로는 병인양요 시대를 그린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