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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인순이의 예술의전당 공연신청이 탈락돼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인순이는 지난 3일 '대중 가수를 외면하는 전문공연장의 현실'이라는 제목으로 기자회견을 가진 데 이어 방송 인터뷰 등을 통해 "예술의전당은 꿈의 무대"라며 "꼭 서고 싶은데 계속 대관에서 탈락하고 있다. 그 이유를 알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언론을 통해 나오는 클래식계의 그럴싸한 변명은 예술의 전당이 클래식 전용이고 클래식을 공연하기에도 모자란다는 것이죠. 추첨에서 떨어지는 것은 모두 마찬가지란 말도 나옵니다.
필자는 예술의전당에서 이런 저런 공연을 여러 번 관람했습니다. 아는 여류 피아니스트의 피아노 협연도 들었고 해외에서 활약중인 여성 트리오의 연주와 그들이 부르는 난데없는 한국 가요도 들었습니다. 이들은 어머니가 좋아하는 노래라는 설명과 함께 파격적으로 대중가요를 불렀습니다.
클래식 연주회에서 설명하는 것도 부자연스러웠지만 노래를 왜 부르는지 설명하는 것은 더욱 낯설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런 게 다 소위 ‘크로스 오버’라는 건가요? 어느 기업의 송년 행사에는 거의 대중 가수들만 나와 시간을 채우는 것도 보았습니다.
이런 사례를 들먹이는 것은 예술의전당이 클래식만을 공연해온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한 것입니다. 남부순환도로에 위치한 예술의전당은 사실 가까운 지하철역도 없어 그 위치에서부터 대중적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도 클래식한 요소에 가점이 되는지는 모르지만 말입니다. 자가용차를 갖고 가지 않으면 가기 어렵다고 여겨지는 곳이 바로 그곳입니다.
때문에 필자는 예술의전당이 아무리 자긍심이 높다고 하더라도 그곳에서 공연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옛 도심 한복판에 서 있는 세종문화회관이 접근성도 좋고 세종대왕이라는 이미지와 어우러져 더욱 매력적인 공연장이라고 보는 사람입니다.
사실 클래식은 장르가 클래식이라고 해서 모두 클래식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30년간 노래해온 인순이의 음악성이 갓 귀국하여 열리는 젊은 음악가의 연주회보다 덜 클래식하고 그 예술성이 떨어진다고 볼 수는 결코 없을 것입니다.
예술은 자로 재듯 끊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수용자들의 입장에 따라 천차만별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술의전당은 진입의 장벽을 치지 말고 마땅히 대중문화에도 문호를 개방하기 바랍니다. 만일 그렇게도 클래식에 목매 달고 싶다면 방법은 있죠. 예술의전당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클래식 음악가와 애호가들이 돈을 모아 새로운 사립 시설을 짓고 폐쇄적으로 운영하면 될 것입니다. 적어도 국민세금으로 지은 예술의전당이 어떤 특정한 집단이나 장르에 국한하여 이용의 폐쇄성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인순이가 부른 노래 ‘거위의 꿈’이란 노래에 이런 가사가 들어있죠.
“난 난 꿈이 있었죠
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
내 가슴 깊숙이 보물과 같이 간직했던 꿈
혹 때론 누군가가 뜻 모를 비웃음
내 등 뒤에 흘릴 때도
난 참아야 했죠 참을 수 있었죠
그 날을 위해…(중략)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저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언젠가 나 그 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날 수 있어요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 순 없죠
내 삶의 끝에서 나 웃을 그날을 함께 해요”
인순이는 모두가 알다시피 불우한 환경을 딛고 일어선 인간승리의 주역인 가수이죠. 영혼에 호소하는 그의 노래를 들으면 깊은 강물 같은 영감에 매료되기 마련입니다. 최근 인기 절정의 음악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최종 회에서 인순이는 ‘클래식’ 오케스트라의 선율에 맞게 편곡된 ‘거위의 꿈’을 부른다고 하는군요. 그 ‘거위의 꿈’이 이제 현실에서 인순이에게 이뤄질 만도 하지 않습니까?
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기자로 입사, 각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의 개량을 지고의 가치로 삼아 보도기사와 칼럼을 써왔다. 그는 동구권의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을 역임했으며 신문사 웹사이트 구축과 운영에서 체득한 뉴미디어 분야에서 일가견이 있다. 저서로는 병인양요 시대를 그린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