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타주의와 호혜주의
동물도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까요?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이타행동이라고 하는데, 동물행동에서 이타주의(altruism)는 자신의 생존이나 번식을 희생해서 다른 개체가 생애에 가장 많은 수의 새끼를 남기도록 하는 행동이라고 정의돼 있습니다.
새들은 경계음을 내 집단을 위험에서 구해냅니다. 자신은 포식자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나 경계음을 들은 집단의 구성원들은 목숨을 구할 수 있습니다. 어미가 자식을 돌보는 것도 이타주의입니다. 부모의 희생이 자식이라는 다른 개체에 이익이 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이타주의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혈연을 중심으로 빚어지는 특징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은 지구라는 이 행성에 살면서 철저히 자신과 가까운 혈연을 위해 이타행동을 하도록 진화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꿀벌사회를 보면 일벌들은 자식을 낳지 않습니다. 못 낳는 것이 아니고 안 낳는 겁니다. 여왕벌이 알을 낳아 로얄제리를 먹고 자라면 생식을 할 수 있는 여왕벌이 되고 일반 먹이만 먹으면 일벌이 될 뿐, 애당초 여왕벌이나 일벌의 유전적인 차이는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일벌은 자기 새끼를 낳아 기르지 않고 여왕벌이 낳은 새끼를 기를까요? 바로 여기에서 혈연을 위해 희생한다는 이론이 나왔습니다.
우리 사람은 부모와 나와 유전적으로 50%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와 내 자식도 50%입니다. 형제끼리도 50%입니다. 나와 손자는 25%, 그리고 나와 조카도 25%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는 셈입니다. 여왕벌과 일벌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50%입니다.
그러나 여왕벌이 낳은 일벌 간에는 75%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습니다(수펄의 염색체는 사람의 남성과 달리 반수체로 구성되어 있어 이것이 모두 자손에게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일벌 한 마리가 자신의 새끼를 낳아 기르면 50% 유전적으로 이익을 얻지만, 새끼를 낳지 않고 여왕벌이 낳은 새끼인 자신들의 자매를 기르면 75%의 이익을 얻게 되는 셈입니다. 그래서 꿀벌들은 이런 이타주의를 할 수 있게 진화되었다는 이론입니다.
이 이타주의를 유전자 측면에서 생각해 보니 결국 동물들의 이타행동은 유전자의 이득을 위해 행동하고 있는 셈입니다. 여기서 비롯된 말이 이기적 유전자입니다.
그러나 가끔은 이타적 행동이 유전과 상관없이 일어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요? 미국 동물학자 윌킨슨은 흡혈박쥐가 혈연과 관련 없이 이타행동을 하고 있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흡혈박쥐는 낮에 고목에 매달려 있다가 밤이 되면 짐승을 찾아가 몰래 살갗에 작은 상처를 내고 피를 빨아먹습니다. 그러나 마땅한 대상을 찾지 못하거나 찾았다 해도 상대에게 들켜서 피를 빨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자주 배를 곯는 불안정한 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피를 먹은 박쥐가 피를 토해내 피를 먹지 못한 다른 박쥐에게 줍니다. 실험결과 이런 박쥐들은 서로 혈연이 전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서로 아는 친구에게만 피를 토해 준다는 것입니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녀석에게는 절대 피를 토해 나눠 주지 않습니다.
다른 박쥐에게 피를 제공했던 박쥐는 그 상대로부터 반드시 피를 보답 받습니다. 남에게 피를 주지 않는 박쥐는 다음에 피를 얻지 못합니다. 이것을 사회생물학에서는 호혜주의(reciprocity)라고 합니다.
인간사회에서도 이타주의와 호혜주의는 매우 일반적이며 본능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출발이 인선 파문으로 순조롭지 못했습니다. 대통령선거 때 도와준 사람이나 친한 사람을 쓰다 보니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그것은 호혜주의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요직이든 아니든 대통령이 친인척을 데려다 쓰면 어떻게 될까요? 혈연에 의한 이타주의는 공직자 인선에서 용납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인간사회에서는 이 두 가지 모두 능력 있는 인재를 기용하는 데 장애가 되는 결점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