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 값
자기 땅 위로 지나가는 바람을 팔아 돈을 벌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헌데 진짜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미국 텍사스주 스위트워터에 사는 루이 브룩스씨는 자기 목장 위를 지나가는 바람을 팔아 한달 약 3천5백만원을 벌고 있습니다.
브룩스씨의 목장에는 78개의 풍력터빈이 설치됐습니다. 풍력발전 회사는 터빈 한 개당 월 500달러씩 그에게 지불합니다. 이 회사는 곧 76개의 터빈을 더 설치할 예정이어서 브룩스씨의 월 수입은 약 7천만원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연간수입이 8억4천만원이면 봉이 김 선달도 놀라 자빠질 대단한 사업입니다.
텍사스는 남한의 약 6배정도 되는 미국 대평원 지대에 속합니다. 전통적으로 텍사스의 이미지는 목장, 카우보이, 석유 같은 것입니다. 특히 미국의 최대 유전지대로 서부텍사스를 여행하다 보면 유전펌프가 숲을 이룬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뉴욕선물시장에서 "석유값이 100달러를 쳤다"는 뉴스가 나올 때 그 기준은 바로 서부텍사스경질유(WTI)를 말합니다.
최근 신문기사를 보니 이 텍사스의 풍경이 아주 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 고갈된 유전지대에는 하얀 날개가 빙빙 돌아가는 풍력터빈이 자리잡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 3년간 텍사스의 풍력발전은 크게 신장하여 텍사스 전기생산의 3%를 점유했고, 무려 100만 가구에 전기를 공급한다고 합니다. 미국 50개 주에서 단연 풍력전기 생산에서 선두입니다.
미국의 전력생산 중 1%가 풍력에서 나옵니다. 이미 독일에 이어 세계 제2의 풍력 생산국입니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미국 전력생산의 5~7%를 풍력발전이 충당할 수 있는 적정목표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015년까지 65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미국은 대체에너지 개발은 등한하고 석유를 물쓰듯하는 나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도 근래 대체 에너지 개발에 무척 힘을 쏟기 시작했습니다. 자동차 연료로는 옥수수를 이용한 에탄올 생산에 열을 올리고, 전력생산에는 풍력과 태양광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변화의 뒤에는 정부의 세제지원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미국이 이렇게 대체에너지 개발에 난리법석을 떠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건 석유문명의 위기가 임박했음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중국 인도 같은 거대한 개도국의 석유소비가 급증하면서 에너지 부족사태가 심각해지는 한편 이산화탄소 배출증가로 지구는 급속히 더워집니다. 지구촌이 이중 딜레마에 빠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미국은 복 받은 나라입니다. 석유 밭이 말라도 땅이 넓어 바람과 태양열, 그리고 바이오 연료 등 재생에너지 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자원을 십분 활용할 기술축적이 잘 되어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축하사절로 온 외국의 고위 인사들과 만나 에너지 외교를 전개했다고 합니다. 아직은 상징적인 회담들인지 몰라도 중요한 접근이라고 봅니다.
밀과 옥수수 등 곡물 값이 오르는 것이 석유값 상승과 연동된 신종 에너지위기라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의 위기 대처방안은 아직 사태의 본질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제주 함덕 바닷가 콘도에 간 적이 있습니다. 자동차 문을 열기가 힘들 정도로 몰아치는 삭풍에 몸은 가누기 힘들뿐 아니라 얼어붙는 것 같았습니다. 바다는 수평선까지 온통 하얀 파도로 뒤덮였고 야자수 잎이 빗자루처럼 휘었습니다.
콘도 안은 딴 세상이었습니다. 넓은 로비는 온실처럼 따뜻했습니다. 화석연료를 사용하여 생산한 전기로 난방을 한 덕택입니다. 전기소비에 관한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뭔가 불안합니다. 경제만 성장하면 옛날같이 석유를 수입하여 풍족하게 쓰며 편안히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석유시대'는 점점 우리 곁을 떠나는 것 같습니다.
필자소개
김수종
1974년 한국일보에 입사하여 30여년 기자로 활동했다. 2005년 주필을 마지막으로 신문사 생활을 끝내고 프리랜서로 글을 쓰고 있다. 신문사 재직중 신문방송편집인협회 이사와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환경책 '0.6도'와 '지구온난화와 부메랑(공저)'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