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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여사 다시 귀를 닫다”
“ 부엌에 시래기 내 놓은 것, 저녁에 먹게 좀 삶아놔라. 미리 쌀 씻어서 제때 밥도 좀 해놓고. 알았어, 그렇게 늦지는 않는다니까.”
“이제 한 정거장 남았어. 조금만 더 기다려. 추운데 바깥에 나와있지 말고, 한 5분 늦겠다”
“아, 글쎄 그건 침 맞아봐야 소용 없어, 양의를 찾아가는 게 낫지…”
지난 한 달간 한국에 있었던 저는 버스, 지하철, 거리 등등 어디에서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처지에서 꼬박 지냈습니다. 육성이든 핸드폰 통화에서든 제 귓바퀴는 남의 말을 주워담기 바빴습니다.
안 들으려 해도 들리는 것이 당황스럽고 때로는 민망하고, 어떤 때는 남의 말을 일부러 엿듣는 것 같은 ‘스릴’도 느꼈습니다.
그것은 ‘심 봉사의 눈뜸’ 과도 같은 ‘신 여사의 귀뜸’의 순간이었습니다.
영어권 국가에 살면서 이민 1세대 한인들이 겪는 언어와 관련하여 가장 좌절되고 막막한 상황은 바로 ‘듣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읽고 이해하는 것은 그럭저럭 해 나가는데, 도무지 들리지는 않기 때문에 자연히 말도 잘 못하게 되어 생활 영어 면에서는 늘 그 타령입니다.
상대의 말을 제대로 못 알아들으니 더듬거리며 대답을 할 수 밖에 없고, 그러다 갑갑해서 급기야는 써서 보여 달라고 하면 ‘ 알아듣지도 못하고 말도 버벅대는 주제에 어떻게 글을 읽을 수 있느냐’는 식의 미심쩍고 뜨악한 표정을 짓습니다.
이내 무시당한 기분이 들지만 상식과 경험으로 생각해봐도 상대방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촌로들 가운데는 본인 이름 자도 못 쓰는 문맹자가 더러 있지만 그렇다고 그 분들이 말을 알아 듣지도 못하고 하지도 못하지는 않으니까요.
그저 배움이 짧은 탓일 뿐 장애가 없는 한, 글은 몰라도 듣고 말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는 거지요. 그러니 청력이나 언어 장애 없이 멀쩡한 데도 듣고 말하는 것을 더듬을 정도로 ‘멍청한’ 사람이 무슨 수로 ‘문자를 읽고 해독씩 이나’ 하겠냐는 속 반응인 것입니다.
주어진 상황과 기본 전제가 주어져도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못한 판에, 다른 사람들의 각양 각색 주제의 대화를 스치는 바람결처럼 유유히 들을 수 있다면 외국인으로서는 거의 ‘신기’에 가까운 ‘듣기 평가 실력’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게다가 세계 각국의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언어 박람국’ 인 호주에서 영어 뿐 아니라 세계 각종 언어를 무슨 수로 죄다 알아 들을 수 있단 말입니까.
사정이 이러니 특히나 버스나 기차 같은 닫힌 공간에서 일행들끼리 자기네 나라 말로 지껄이거나 전화로 떠들어 댈 때면 창세기 바벨탑 아래서 이런 혼란이 벌어졌겠거니 하는 싱거운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 지경에서 살다가 내 나라에 오면 갑자기 귀가 뻥 뚫린 듯 다른 사람의 말이 자동으로 귀에 솔솔 다 들어오니 어찌 심 봉사의 눈뜸의 경이보다 못할 수가 있겠습니까.
어떤 날은 남의 집 저녁 상 차림도 짐작할 수 있고, ‘지금 내 옆의 이 사람은 5분 후 모 처에서 친구를 만나겠군’ 하는 등등, 하등 관계 없는 남의 일에 안 끼일래야 안 끼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에는 재미나던 것이 나중에는 슬슬 짜증으로 변했습니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책을 읽는다거나 혼자 조용히 생각을 하려해도 도무지 집중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왁자지껄 소음 속에 휩쓸려 다니려니 피곤이 가중되고 안 듣고 싶은 남의 말을 어쩔 수 없이 들으려니 무척 괴로왔습니다.
그 느낌은 지난 번 임 철순 님의 칼럼의 한 구절과 똑같았습니다.
화담 서 경덕 선생이 어느 날 갑자기 눈을 뜬 장님이 집을 찾지 못하고 울자 그 장님에게 도로 눈을 감고 가라고 일러 주었다고 하지요.. 갈피를 못 잡겠거든 도로 눈을 감아라, 그러면 길이 열릴 것이다, 내 집을 찾지 못하는 열린 눈은 망상일 뿐이라는 의미의 충고를 했다지요.
도로 눈을 감아야 익숙하게 가던 길을 찾을 수 있는 그 장님처럼, 저 역시 호주에서 16년을 귀 닫고 사는 동안 제 나름의 길을 찾아가는 ‘노하우’를 개발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귀를 닫아야 오히려 환해지는 ‘내면으로 가는 길 닦음’말입니다.
귀가 닫혀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돌아보며 사색도 하고, 명상도 하고, 기도도 할 수 있었던가 봅니다. 남의 말이 안 들리기 때문에 출퇴근 길을 오가며 글에 대한 ‘와꾸’도 한 편씩 짜고 앞으로 살아갈 일도 ‘도모’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얼마 전 호주에는 버스 안에서 자기 나라 말로 떠드는 프랑스 인 두 명을, 따라 내리면서까지 쫓아가 폭행을 한 호주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과격 행동은 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짐작하기는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계속 ‘소음’이 일어나면서 그 사람의 세계를 마구 흩뜨려 놓자 짜증이 극에 달했던 게지요. 아마도 그 사람은 저처럼 귀를 닫고 갈피를 잡는 법을 터득하지 못했던가 봅니다.
호주로 돌아온 저는 이제 다시 귀를 닫고 살고 있습니다. ‘웬수 같은 영어에는 언제나 귀가 뚫리려나’ 하던 ‘오매불망’도 이제는 내려놓을 참입니다.
차라리 눈을 감고 귀를 닫아 ‘오묘한 자기세계’에서 노니는 것이 더 속 편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