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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하지 마세요
  • 뉴스관리자
  • 등록 2008-02-23 10: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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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프랑스어 사전과 씨름하면서 어설프게나마 읽었던 소설이 있습니다. 좋아했던 프랑스 작가 장 콕토(Jean Cocteau)의 <무서운 아이들(Les Enfants Terribles)>입니다. 내용과 인물의 성격구성이 평범치 않아 깊은 인상을 받았기로, 그 후로도 한국 번역판까지 몇 차례는 읽었던 책입니다.

작은 오해가 사람을 의심케 하고 절망하게 만들기도 하며 자칫하면 죽음으로까지 몰고 갈 수도 있다는 내용을 콕토는 마치 어린이들이 벌이는 연극 무대 위의 얘기처럼 펼칩니다.

남동생을 사랑하는 누이의 장난기 어린 빗나간 질투심으로 인해 빚어지는 행위가 동생과 사랑하는 소녀의 운명을 행복의 반대편으로 밀고 갑니다. 거짓된 사소한 말 한 마디가 동생을 절망에 빠지게 하여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청소년기의 소년소녀들이 아무 생각이 없는 것처럼 오해하기 쉽지만, 그들에게도 증오와 질투 절망은 다 있습니다. 그런 감정을 제대로 여과시키지 못한채 행동하는 바람에 비극이 빚어지곤 합니다.

캐나다에 살기 시작한 뒤 한 실력있는 가정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이후 나의 모든 건강을 상담하고 여느 가정의들이 그러하듯이 개인적 생활얘기도 심도 있게 주고 받는 신뢰했던 의사였습니다. 외과의, 언컬러지스트(Oncologyst), 내과의 등 모든 의사들을 연결해 주었고 나의 수술에까지 동참했습니다. 감사함을 표시하고자 매년 그의 생일과 명절을 잊지 않고 챙겼습니다.

1년 전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진료실에서 차례를 기다리다 무료하여 병원 갈 때마다 가지고 다니던 Astrology(별자리 책)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아침 무슨 연유에서인지 남편의 태생월에 대한 성격분석을 자세히 해달라는 친척의 전화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의사가 들어와 앉더니 “Sun Sign(Astorology) 책을 읽고 있지요? 어느 태생월을 읽고 있나요?”하고 물었습니다. 나는 친척남편의 태생월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의사는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해지며 “나를 읽는 거요? 나는 성격이 이렇고 저런 사람이오” 하면서 화를 내는 것입니다.

그 순간 무척 황당하고 놀랐습니다만, 공교롭게도 내가 읽고 있었던 친척 남편의 태생월과 그의 태생월이 같은 우연에서 생긴 오해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내가 설명할 시간을 전혀 주지 않고 혼자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이후 그는 내가 그의 성격을 파악하려는 걸로 오해하고 상담 자리를 부담스럽고 불편하게 만드는 때가 많았고, 점점 나 역시 그의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0여년 가까이 상담을 맡아 준, 나의 가족사를 잘 알고 신뢰하는 의사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였는지, 그런 오해를 받기 싫어 편지를 할까 했으나 성질이 급하여 혼자 상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그를 나는 말없이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는 다시는 쉽게 찾을 수 없는 능력 있는 의사였지만 불편한 관계를 해소하지 않는 한 상담할 때마다 스트레스가 쌓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마음도 많이 아팠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오해로 인하여 빚어지는 희비극이 많은 것 같습니다. 사소한 글자, 말 몇 마디로 모든 것을 단정 짓는 오해, 심지어는 토씨 하나가 잘못 쓰여져 생기는 미묘한 갈등, 설명하기가 싫어 침묵하는 경우 말한 당사자나 듣는 상대방이 마음대로 상상하는 오해, 어떤 경우는 오해를 풀려다가 더 큰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예 오해를 무시함으로써 더 큰 오해를 자초할 때도 있지만 지나친 친절도 오해를 가져옵니다.

더욱이 영어처럼 단어와 문장이 명확하지 않은 한국어의 경우는 접두사나 어미를 쓰는 방법, 다양한 부정사 용법, 억양의 고저, 된소리의 발음에 따라 문제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농담도 어디서 어디까지가 농담인지 불분명한 경우가 많고 어느 한계까지 어떻게 경어와 존칭을 써야 하는지, 남녀간 세대간의 차이도 오해를 만드는 큰 요소입니다.

그러나 이런 오해는 모두가 자기 식의 잣대와 해석으로 빚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상대방 편에서 생각하기보다 내가 살아온 내 경험의 세계로만 판단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나의 판단이 다 옳다고 생각하는 독선과 오만, 상대가 얘기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주지 않는 기다릴 줄 모르는 마음은 더 큰 오해를 불러 일으킵니다. 그로 인하여 많은 것, 특히 사람들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것은 선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런 이들을 생의 여로에서 만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만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이 소중한 만남을 잘 지켜가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발에 상대방의 신발을 신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신발로 굽이굽이 흘러가는 시냇물을 따라 여유롭게 걸어봅니다. 다시 한번 생각하는 시간과 함께….


오마리


글쓴이 오마리님은 샌프란시스코대학에서 불어, F.I.D.M (Fashion Institute of Design & Merchandising)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후 미국에서 The Fashion Works Inc, 국내에서 디자인 스투디오를 경영하는 등 오랫동안 관련업계에 종사해 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 그림그리기를 즐겼으며, 현재는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많은 곳을 여행하며 특히 구름 찍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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