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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필이 이야기
  • 뉴스관리자
  • 등록 2008-02-04 12: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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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된 동물보호법이 1월 27일 발효됐습니다. 목줄이나 인식표 없이 개를 끌고 나가면 과태료를 물게 됩니다. 동물을 버리면 50만원, 인식표가 없어도 50만원, 학대하면 30만원, 목줄이 없거나 개똥을 안 치우면 10만원…. 아직 지자체 조례가 마련되지 않아 벌칙규정은 적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과태료 액수에 대한 보도도 조금씩 달라 헷갈립니다.

서울시의 경우 동물신분증으로 생체주입형 마이크로 칩을 도입한다고 합니다. 쌀 한 톨만한 8㎜ 크기의 전자칩을 왼쪽 귀 뒤편 목덜미에 주사기로 삽입하는데, 반영구적 재질인 전자칩에는 주인의 이름과 주소 연락처 등의 정보가 담깁니다. 1월 31일 조례개정안을 입법예고한 서울시는 하반기에 2개 자치구에서 동물등록제를 시범 실시하고, 내년부터 서울 전역으로 확대 시행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주민등록을 해야 할, 이른바 반려동물(companion animal)이 우리 집에도 하나 있습니다. 슈나우처 미니어처 수컷으로, 2006년 병술년 개띠 해에 자랑스럽게 태어난 개입니다. 이름은 봉필. 한자까지 있습니다. 쑥 봉(蓬)에 향내날 필(馝)입니다. 실제로는 쑥향내는커녕 하도 혀로 몸을 핥아대서 침냄새가 더 나지만 하여간 봉필입니다.

둘째 아들 녀석이 낑낑거리며 자전을 찾아서 逍走(소주ㆍ노닐고 달리고) 德狗(덕구ㆍ덕있는 개) 등 이름 10여 개를 지어왔기에 “이걸로 하자”고 내가 봉필을 찍었습니다. 고르고 보니 장난기 많고 씩씩한 수컷의 이름으로 제 격인 것 같습니다. “야, 이 봉필이 쉐이야” 하고 부르면 잘 알아듣고 다가옵니다.


▲ 봉필이녀석 제 정신일 때.
봉필이는 2년 전 갓 태어난 아기일 때 우리집에 왔습니다. 그 녀석이 태어난 집의 주부가 임신을 하는 바람에 개를 기를 수 없어 분양해 주었습니다. “이리 와. 엄마한테 와”하고 개를 부르는 여자를 보고 “어머 어머, 지가 개 엄마래”하며 징그러워하던 아내는 어느새 봉필이와 얼굴을 부비며 “우리 애기, 왜 이렇게 이쁘게 생겼어?” 하는 정도가 됐습니다. 3월 27일 봉필이 생일에는 미역국까지 끓입니다. 물론 개가 아니라 사람들이 먹지만….

개의 1년은 사람의 5년이네 7년이네 그러던데, 그렇게 따지면 그 놈은 지금 한창 팔팔한 10대입니다. 궁금한 게 참 많습니다. 아내의 화장대에서 튜브로 된 화장품을 끌어내려 물어뜯고 헤쳐 놓은 것은 여성에 대해 궁금한 게 많은 사춘기에 있을 수 있는 행동입니다. 세탁을 맡기려고 내놓은 내 양복을 찢고 단추를 먹은 것도 빨리 어른이 되어 신사복을 입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입니다. 또 얼마나 읽고 싶었으면 <서부전선 이상없다> <연금술사> 이런 소설책을 골라 갈갈이 찢었겠습니까?

하지만, 그런 날은 얻어 터지는 데 전혀 이상이 없는 날입니다. 일을 저지른 날 집에 들어가면 어디론가 재빨리 숨는데, 뒤지게 얻어 맞고 내 손을 물려고 하다가 더 터진 날도 있습니다. 나는 화가 나면 그야말로 개 패듯이 팹니다. 한때는 양털 담요도 뜯어 먹었습니다. 묶어 놓고 외출했을 때 심술이 나면 지정된 장소 외의 곳에 똥 오줌을 갈겨 놓곤 했습니다. 요즘은 철이 좀 들어서 말썽을 덜 피웁니다. “이거 언 놈이 한 짓이야?”하고 다 찢어진 책을 들이대면 귀와 꼬리를 내리고 슬슬 달아납니다.

아내는 띠동갑이어서 그런지 봉필이를 개천재라고 두둔하기도 하는데, 내가 보기엔 영 아닙니다. 실컷 두들겨 맞고도 10여 분만 지나면 해해거리고 다가오는 게 문자 그대로 ‘개대가리’입니다. 작년 11월부턴가는 밖에서 혼자 자지 않고 안방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내 가랑이 사이에 동그랗게 몸을 꼬부리거나 아내와 나 사이의 이불 위에서 사람처럼 잠을 잡니다. 무서운 꿈을 꾸는지 우는 날도 있습니다. 발로 차거나 몸 위에 발을 얹어도 무겁지도 않은지 아랑곳하지 않고 코를 골며 잘 잡니다.

일어나서 잘 때까지 이 놈의 관심사는 온통 먹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주어진 걸 다 먹고 사람들이 먹는 것까지 더 먹고 다른 걸 또 먹을 수 있을까, 그 놈의 삶의 동기이자 목표입니다. 아침 6시 무렵에 “봉필이 밥 먹자” 그러면서 밥그릇을 들고 사료를 푸러 부엌 뒤로 나가면 일단 나를 따라 문 앞까지 갔다가 밥그릇이 있던 자리로 돌아가 앉아서 기다리는데, 이 규칙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습니다. 밥그릇을 내려놓는 순간과 주둥이를 들이미는 순간이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一毫(일호)의 差錯(차착)도 없다는 말에 그야말로 일호의 차착도 없습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 이덕규의 <밥그릇경전>이라는 시를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렇게도/ 불경스런 잡념들을 싹싹 핥아서/깨끗이 비워놨을까요/볕 좋은 절집 뜨락에/가부좌 튼 개밥그릇 하나/고요히 반짝입니다//단단하게 박힌/금강말뚝에 묶여 무심히/먼산을 바라보다가/어슬렁 일어나/앞발을 굴리고 밟고/으르렁 그르렁 물어뜯다가/ 끌어안고 뒹굴다 찌그러진,//어느 경지에 이르면/저렇게 밥그릇을 마음대로/가지고 놀 수 있을까요// 테두리에/잘근잘근 씹어 외운/이빨경전이 시리게 촘촘히/박혀 있는, 그 경전/꼼꼼이 읽어내려 가다보면/어느 대목에선가/할 일 없으면/가서 밥그릇이나 씻어라 그러는/조주선사와 어느 학인과의 선문답//

절집에 있는 개가 땅바닥에서 밥그릇을 굴리고 차면서 노는 모습을 보고 이 시를 썼을 것입니다. 밥벌이의 지겨움과 비굴함에 시달리며 삶의 갖가지 선택과 결정의 고비에서 갈등과 괴로움을 겪는 인간에 비해 개는 얼마나 분명하고 확실한가요? 정말 어떻게 하면 인간은 밥그릇을 가지고 놀 수 있을까요?


▲ 날 죽여라 죽여. 아햏햏!
사람들이 가훈으로 흔히 쓰는 <勤 嚴 明(근 엄 명)>, 이 말도 생각하게 됩니다. 봉필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으니 부지런하고, 규칙에 충실할 만큼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먹고 싶은 욕구에 늘 분명하고 충실하게 행동합니다. 집에 들어가면 두 발로 껑충껑충 뛰면서 아는 척 하라고 달려듭니다. 발라당 드러눕기 일쑤입니다. 쓰다듬거나 안아 주어야 얌전해집니다.

그 녀석에겐 모든 게 분명합니다. 주저와 망설임, 미결과 보류가 없습니다. 다만 집안에서 밥그릇을 가지고 그렇게 놀 수 없습니다. 좀 안쓰럽지만, 만약 그랬다가는 반은 죽음이지요.

생 떽쥐베리의 <어린 왕자>에는 사막에서 만난 어린 왕자와 꽃의 대화가 나옵니다. 어린 왕자가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고 묻자 꽃은 “예닐곱 명 대상(隊商)이 지나가는 걸 봤지만 바람에 불려 돌아다니니까 어딜 가야 만날지는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뿌리가 없어서 많은 불편을 느낀다는 말을 합니다. 식물이 보기에 인간이 뿌리가 없어 불편한 존재라면 동물에게는 어떻게 보일까.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필요한 결단을 제때 하지 못하고 일정하지 못한 그런 존재는 혹시 아닐는지.

개를 기르면서 이런 생각이나 하는 것은 별로 어울리지 않을지 모릅니다. 하여간 개를 기르다 보니 자꾸 정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두 번 다시 개를 기르지 않는다는 사람 중에는 그 이유로 헤어지는 것이 두렵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애완이 아닌, 반려동물이라는 말이 생겼나 봅니다.

개가 곁에 오는 것도 싫어하고 끔찍스러워 하는 사람들에게는 막말로 이 글 전체가 끝내 ‘개 끌고 다니는 소리’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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