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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칼럼에 집필하시는 분들에 비하면 약관인 주제에 나이 먹은 척 하겠습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린 시절부터 많이 들어온 고명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남긴 명저들은 꼭 읽어보아야 한다고 하면서도 그러지 못한 자책감이 늘 있었습니다. 경제학에서 찾자면 아마도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 비슷한 위치의 고전일 겁니다.
그런데 아직도 보아야 할 책은 많은데 나이는 들어가고 생업과 관련된 일에 매달려서 신문을 자세히 보는 것조차 어려운 지경이니 어느 세월에 고전을 읽을까 걱정입니다.
최근 한 가지 희망을 보았습니다. 버트란드 러셀의 서양철학사(The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를 다시 읽으면서 깨달은 것입니다. 러셀은 정말 다양한 방면(철학 수학 등)에 뛰어난 이해와 독창적 공헌을 크게 했다는 것이 제 생각인데, 그의 책을 읽으면서 이 점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러셀은 B.C. 3 세기까지의 그리스 문화를 높이 평가합니다. 하지만 제가 그리스 신화의 신들처럼 우러러보던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 러셀은 상당히 날카로운 평가를 내립니다. 물론 이들 고대 그리스 지성들이 당대의 사조를 정리하고 체계화시킨 공은 인정하면서 말입니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다하지 않은 것에 대해 러셀은 마치 다음 생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서 ‘죽음을 고대하는 광신도’ (필자의 표현임)와 유사한 점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플라톤의 기록에 나오는 것처럼 실정법을 지켜야한다는 대의명분이 중요했으면 비참한 느낌으로, 앞날을 알 수 없는 죽음을 의연히 맞아야 함에도 오히려 사후세계에 대한 기대로 부푼 종교인의 모습이었다고 평가합니다. 소크라테스의 죽는 모습에 시비를 걸 수 있는 러셀의 까다로운 안목에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플라톤에 대한 평가도 혹독합니다. 그리스 전성기에 꽃피었던 민주주의가 말기에 접어들며 그야말로 중우정치 (한 예가 소크라테스의 사형을 결정한 집단재판)가 판을 치게 됩니다. 플라톤은 이 중우정치에 크게 반발하고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게 러셀의 평가입니다.
플라톤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국가는 결국 중우정치와는 대칭되는 스파르타의 특이한 계급사회, 즉 귀족정치입니다. 남자아이들을 유년기부터 합숙 양육하고 부모와 관계를 단절시켜, 나이든 사람은 모든 젊은 사람들이 부친으로 여기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상황과 플라톤 개인적인 선입견에 따른 처방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연극과 배우들을 매우 경멸했고 지배계층의 자제는 이런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한다고 설파했습니다.
러셀의 나라 영국은 2백여년 전에 이런 플라톤의 처방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공립학교 남자아이들을 겨울에도 반바지를 입히는 등 단순하고 엄격하게 키우는 전통으로 유명해졌습니다. 물론 한국의 경우도 비슷한 전통을 일본을 거쳐 전수받아 목이 높고 빳빳한 교복을 입히는 등의 전통을 만들었지요.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도 재미있습니다. 그가 알렉산더 대왕의 유년기에 가정교사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결국 그의 제자는 잡다하게 흩어져있던 도시국가와 당시 문명의 변방처럼 여겨지던 중동지방 등을 한꺼번에 싹 쓸어 없애는 위업을 달성한 인물입니다. 피와 호르몬이 끓기 시작한 알렉산더가 귀찮은 노인 정도로 여길 때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로 와서 좌판을 펼쳐 여러 분야에 공헌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정치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했는데 그가 이상적이라고 여겼던 국가는 전형적으로 아테네 전성기 모습입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온 나라가 한 눈에 들어오고, 시민들은 다른 사람들이 어떤 자질과 능력이 있는지 다 잘 알고 있어서” 무작위로 국사를 결정하는 책임자를 뽑아도 잘 굴러가는 나라를 꿈꾸었습니다. 러셀이 이 부분을 강조한 것은 결국 과거의 현인들도 주변의 환경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예시인 듯싶습니다.
제가 러셀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것은 설령 앞으로 시간이 생겨서 그리스 고전을 읽더라도 이들의 정치론은 생략해도 될 거라는 점입니다.
그리스 시대의 지식인들이 과학적인 사고방식을 탄생시켜 키운 것은 대단한 일이었지만, 그런 사상이 로마시대 이후 천 년 넘게 사장되었었다는 사실은 매우 경악스럽습니다.
러셀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 시대 이후부터 합리적 독창적 성찰의 전통이 끝이 나고 맹목적인 전통에 대한 숭배의 시대가 시작됐다고 합니다. 아테네가 정치적 자유를 잃은 것이 이런 변화의 중요한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맹목적 전통은 우리에게도 특히 익숙한 것입니다. 이런 전통은 한국이 유럽 국가들에 비해 공자님과 같은 선현 말씀을 절대시하는 기간이 길었기 때문에 더 고착화됐을 것으로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독창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매우 중요한 자질인 것 같습니다.
허찬국(許贊國):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및 경제연구본부 본부장. 1989년 University of California at Santa Barbara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11년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지급준비은행 조사부와 연방지급준비제도 이사회(FRB) 국제부 연구위원을 역임했다. 2000년 한국경제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긴 후 국내에서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소 초빙연구위원과 아주대학교 겸임교수로도 활동했다. 현재 예금보험공사 자문위원과 금융감독원 거시금융감독포럼 위원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