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의 잔상(殘像)
민주주의 축제이기는커녕 음울하고 지리한 장마 같던 대선 한 판이 끝났습니다. 이번 대선으로 야당으로의 정권교체가 두 번 째 이뤄졌습니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완성도가 어지간히 높아져갑니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도 공영방송의 편파성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습니다. 시민 단체인 공발연(공영방송발전을 위한 시민연대)은 야당후보에게 불리하게 작용한 여러 건의 모니터사례를 발표했습니다. 주로 BBK 관련 보도였습니다. 공발연은 12월3일엔 MBC에 대해 “편파 보도를 즉각 중단하고 공정한 선거 보도를 통해 유권자의 후보 선택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해 주기 바란다”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방송위원회도 KBS 등 두 방송의 편파성에 주의를 내렸습니다.
선거보도의 편파성은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행위입니다. 그런 편파성은 자칭 ‘민주평화개혁세력’에도 보탬이 되지 못했습니다. 12월20일 아침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 BBK를 너무 물고늘어진 것이 패인이었다는 어느 정치평론가의 말을 라디오로 들었습니다. 불독처럼 물고 늘어지는 광경을 국민들은 TV를 통해 지겹게 보았습니다. 지금 국민들의 수준은 높아질 대로 높아져있습니다. 돕는답시고 행하는 어줍지않은 편파성이 투표에서 역효과를 초래했는지도 모릅니다. 대선은 끝났지만 어떤 경로로 편파보도가 발생하는지 그 메커니즘을 규명함과 동시에 필자는 차제에 공영방송 권력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방송은 공영이라는 미명하에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영향력이 미미한 사영(私營) 신문의 유가 아닙니다. 외부의 통제는 집권세력 빼고는 할 수 없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이제 정권이 교체되었으니 새로운 주인을 섬길까요. 2007년12월19일 투표 당일 오후까지 BBK를 리플레이 하던 공영방송은 이명박 후보 당선이 확정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태도가 표변했습니다. 마치 ‘용비어천가’를 부르며 줄서기에 나선 것 같습니다. .
몇 년 전 어느 야당 의원이 방송공사의 고임금 공개를 요구하자 뉴스로 호되게 비판했던 기억이 납니다. 공개를 거부하는 대항논리가 언론기관이기 때문이라는 것 같았습니다. 경영자료를 안 내놓자 공발연은 행정소송을 냈지만 완전히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언론 자유는 중요한 것이죠. 그러나 언론 자유는 방송사의 자유이기에 앞서 먼저 국민의 언론 자유임을 잊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비록 임기 말이었지만 방송공사 시청자 센터장이 자기 방송의 편파방송에 항의하여 사퇴하고, 선거방송심의위원인 대학교수가 라디오 프로의 편파성을 지적한 심의 결과를 뒤집자 항의하여 심의위원을 사퇴하는 것이 이 나라 공영방송의 현주소입니다.
공영방송엔 국민들이 시청료도 냅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가장 존경한다는 언론인을 사장에 앉히고 그 사장은 경영실패로 노동조합의 연임 반대에 직면하자 뒷문으로 출근하는 모양새마저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사장 시절이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모습은 분명히 선진국의 모습이 아닙니다. 사실상 국가가 방송사 사장을 임명하고 고삐를 쥔 공영방송 체제에서 국민만을 섬기는 언론자유가 태어난다는 것은 조직원들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올해 프랑스 대선 보도에서 공영TV도 어떤 날에는 야당 후보인 사회당 세고렌느 르와얄의 보도시간이 여당 후보 니콜라 사르코지 후보(현 대통령)보다 더 길었던 날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죠.
공영방송이 정치적인 중립을 지켜 권력자가 아닌 주권자에게 충실하게 하려면 민영화도 검토해야 합니다. 민영방송인 서울방송은 편파시비가 적은데 왜 공영방송에는 공정성시비가 끊이지 않는지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시장원리로 스스로 벌어 먹고 살려면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여론을 의식하여 처신한다면 편파성이 휠씬 줄어들지 않을까 합니다. 아예 공영방송사 사장을 국민들이 직접 투표로 뽑는 것도 방법입니다.
차제에 방송위원회는 그 권한을 지방에 나눠줘야 합니다. 걸핏하면 선출된 권력이니 균형발전이니 외쳤던 사람들은 선진국들이 어떤 제도를 택했나 보시기 바랍니다. 건물을 지방으로 옮기는 것만으로 분권화 흉내를 낼 게 아닙니다. 독일은 방송위원회가 지방분권화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임명된 권력인 방송위원회 기능을 대폭적으로 선출된 권력인 시와 도에 이양해야 합니다. 그래야 언론자유를 보장하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완성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