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不見不散,혹은 카르마(業)
  • 뉴스관리자
  • 등록 2007-12-07 16:21:35

기사수정
不見不散,혹은 카르마(業)

사흘만 더 남국의 햇살을 주시길 소원했던 릴케의 싯 구절을 무색하게 이제 가을은 겨울의
옷소매를 이끌고 와 아침저녁 없이 찬 기운을 북돋아 가고 있습니다.
한 시절 가을을 구가하던 형형색색의 나뭇잎들도 시름을 털듯 날려 버리면 나뭇가지에
터잡았던 빈 둥지를 마른 구름마저 비껴가는 게 계절탓으로 여겨져 처연하기 그지없습니다.

시나브로 지는 나뭇잎, 성긴 가지를 간지르는 잔요로운 햇살, 흙으로 진 낙엽의 서걱거림,
흰 눈이 무더기로 쓸리듯 속절없는 억새의 부대낌, 그늘 잃은 왕벚나무 그루터기의 삭막함,
이 모든 것들이 자연의 순환 질서를 오롯이 순응하고 있음은 불문가지일 것입니다.

이런 계절에 조락하는 것이 이 뿐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에도 확연하게 꼬집을 수 없는 조락의 감정이 녹아들어 몸은 움츠리지만
열려지는 가슴을 비비고 싶도록 따스한 정리로 오붓해 지는 것 역시 계절 탓인가 봅니다.
어느 찬 바람 소슬한 저녁 오랜만에 옛 친구들을 만나 몇 순배 술잔이 돌았습니다.
술김이기도 했겠지만 계절적 상념 탓인지 저간의 안부 가운데 어쨌든 오래 살다보면 만날
사람은 꼭 만나게 돼 있다며 이것은 자연이치이자 카르마(業)라고까지 비약을 했습니다.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고 푸르던 나뭇잎이 지는 것이야 자연이치이지만 관계망의 끈으로
이어지거나 끊겨지는 사람의 인연이 자연의 순리라는 말에는 얼른 동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래 살고 볼 일이라는 친구의 말끝에서 흰 눈밭에 노란복수초가 피어나듯
까마득히 잠재웠던 기억 하나가 불길로 날아드는 눈처럼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어느 핸가 중국 대련을 방문 하던 때의 여행길에서였습니다.
저무는 햇 무늬가 노을로 삭아지는 때, 아카시아꽃 형태를 조형한 가로등이 빛을 돋구는
길을 지나치다가 유럽풍의 카페를 연상시키는 가게의 현판을 보고 의아 했습니다.
불빛을 등으로 받으면서 들고 나는 입구에 걸린 “不見不散”이란 상호 때문입니다.

漢字야 두고라도 漢文에 대해서는 어중간 했던 터라 동반한 가이드에게 물었습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가이드는 몇 년 동안 안내를 해 봤지만 저런 간판을 두고 질문 받기는
처음이라며 단순한 뜻 글 해석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필연적으로 만나지 않으면 안 될 대상”, 언젠가는 꼭 만나야만 할 숙명임을
믿는다면서 중국인은 이 의미를 인연을 뛰어 넘어 業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거주이전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은 중국, 거기에 50여 다민족이 혼재하고 있는 중국인들,
그래서 한 번 헤어지면 다시 만나기 어렵다는 역사적 지정학적 배경에다 유난히 인연이나
업에 대해 의식적으로 경도 돼 있다는 나름대로 납득할만한 설명이었습니다.
당시 내가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공감했던 것은 역사적으로 민족간 분쟁, 환란, 전란을
겪으면서도 종내는 하나의 中和를 이룩한 중국 저변의 힘을 한문을 통해 엿본 때문입니다.
2천 5백여 년 전 공자에서 노자, 장자에 이르는 경전들을 앞에 하고서 제목 정도만 일별 했던
중국에 대한 얕은 상식으로는 넘볼 수 없다는 생각까지를 아울러서입니다.

그리고 한 나라의 의식과 생활문화의 범주를 규정하고 제단 하는 것이 바로 언어이고
언어는 곧 한나라를 지탱하는 근본이라는 걸 부정 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중국을 사랑한 저널리스트 에드거 스노의 말 가운데,
-한자는 그 안에 구축된 과거 전통과 경험을 상기시킴으로써 오늘날까지 현대를 지배하는
자체의 생명력을 지닌다.-는 정의에 공감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겨울초입 늦은 저녁, 숯불에 지글거리는 삼겹살을 앞에하고 옛 얘기를 안주로 만날 사람은
꼭 만난다는친구가 설파하는 인간적 관계망이 업으로 비약하는 걸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 끄덕거림 뒤에 不見不散에 기댄 중국 연인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어른 거렸습니다.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 삶에 찌들린 하루가 찬 바람에 소슬하기만 합니다.
벌거벗은 가지에 새 잎이 피어나듯 만날 사람은 언젠가 만날 수 있다는 기다림의 불씨를
지피는 것만으로 언 가슴이 절로 녹아드는 따뜻한 겨울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양수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최신뉴스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더민주당 논산 시의회 9대 의회 후반기 의장 후보 조배식 의원 내정 더불어민주당  논,계,금  당협은 15일  저녁  7인의  당 소속  시의회 의원[ 서원, 서승필 ,조용훈.윤금숙 ,민병춘 ,김종욱 조배식 ]을 긴급 소집  오는 28일로 예정된  논산시의회  후반기  의장  내천자로  재선의원인  조배식 [광석]  의원을  결정  한것으로  알려졌다.  더...
  2. 논산시의회 9대 후반기 의장 놓고 민주당 민병춘 .조배식 ,조용훈 3파전 ,, 국힘 이상구 표 계산 중 " 오는  6월 28일 실시하는  논산시의회  9대  후반기  의장 선출을  둘러싸고    다수당인  민주당  내 후보단일화를  위한  물밑 작업이  치열하다. 9대 의회  후반기  의장 출마를  선언한  민병춘  조배식 조용훈  세의원이    15일로 예정된    단일 후보  ...
  3. 기자수첩 ]논산시 추락하는덴 날개가 있었다. 시장[市長]과 선량[選良]의 불화 끝내야 한다 . 제22대 총선이 끝났다, 원구성도  끝났다, 각 지역에서  선출된  국회의원들은  소속한 정당의  같고 다름과는 상관없이  지역구 안의  지방자치단체장들과  머리를 맞대고  출신지역구의 내년도  사업예산 확보를 위해  사활을 건  로비전에  들어간지  오래다. 여늬  지역구  국...
  4. 전철수 전 취암동장 논산농협 사외이사 당선 , 대의원 선거인 85% 지지 얻어 눈길 지난  6월  10일 실시한 논산농업협동조합  임원 선거에서  윤판수 현 조합장이  추천한  전철수[63] 전 취암동장이  대의원 105명이  참여한 신임 투표에서  선거인의  85%에  달하는 87표 를 얻어 논산농협 사외이사로 당선 되는  영광을 안았다. 논산시 내동  [먹골]  출신으로  청빈한&nbs...
  5. 임연만 사무국장 올해 충남 장애인 체전 중위권 진입에 전력투구 [全力投球]! 지난  6월 1일자로 논산시  장애인체육회 [회장  백성현 논산시장 ]  사무국장으로  전격 발탁된  임연만  [66]사무국장 ,  더  젊었던  시절부터  활발한  체육분야  활동을 통해  체육행정 및  현장 분위기를  익혀온  터여서  두달 남짓  앞으로 다가온  충남도&nbs...
  6. “논산시, 미래세대와 함께하는 6.25 전쟁 기념 및 선양행사 눈길 “논산시, 미래세대와 함께하는 6.25 전쟁 기념 및 선양행사 - 일상 속 살아있는 보훈, 미래세대와 참전유공자 교감의 장 마련 - 논산시(시장 백성현)는 25일 오후 논산대건고등학교 대강당(마리아홀)에서 6.25 전쟁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호국영령과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을 기리기 위해 제74주년 6.25 전쟁 기념식과 선양행사...
  7. 논산시 7월 1일자 2024년 하반기 정기인사 – 전보 등) 논산시 인사발령 (2024년 하반기 정기인사 – 전보 등) 7月 1日자◇전보(4급)△농산경제국장 김영민(승진) △건설미래국장 김봉순(승진) △보건소장 김배현(승진) ◇전보(5급)△ 홍보협력실장 김병호 △자치행정과장 김영기 △안전총괄과장 김무중 △100세행복과장 성은미 △회계과장 엄해경 △민원과장 성경옥(승진) △농촌활력과장 허영...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