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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밥상
  • 뉴스관리자
  • 등록 2007-10-13 19:2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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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집에 계실 때는 하얀 명주 바지저고리를 입고 계셨습니다. 대체로 사랑이나 서재에서 머무르셨는데, 서도와 고서적 읽기에 열중하시고 기분이 나시 면 벚꽃나무 아래 서서 시조를 몇 수 읊으시곤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특히 글 쓰시기를 좋아하셔서 집의 한 벽에 페인트로 우리 집의 십계명을 쓰셨습니다. 기억하는 것은 십계명 중 네 항목뿐입니다.
첫째 네 부모를 공경하라,
둘째 네 이웃을 사랑하라,
셋째 인류에 봉사하라,
넷째 네 형제를 사랑하라.
그런데 어려서부터의 의문은 아버지는 왜 형제보다 이웃을 사랑하라를 두 번째로 더 중히 여기셨을까? 네 이웃이나 인류가 똑 같은데 왜 이웃이 인류보다 앞 순위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되자 아버지는 서재에 칠판을 놓으시고 서도의 궁체를 가르치신 후 초서를 쓰기 위한 필수 과정으로 천자문을 가르치셨습니다. 여름 겨울 방학이면 아침 저녁 두 시간 씩 해야만 했던 천자문 공부와 서도 연습이 지겨웠습니다. 짧지도 않은 그 시간 무릎을 꿇고 써야만 하는 게 초등학생에겐 가혹했습니다.

친구들은 놀자고 부르니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 것입니다. 붓글씨 획이 틀어지면 아버지는 정신통일이 안 돼 있다며 작은 나뭇가지로 손등을 치시고, 눈물은 연습장에 떨어져 먹물과 뒤범벅되곤 했습니다.

그래도 즐거웠던 것은 사랑으로 따로 차려 들어간 밥상을 항상 저만 아버지와 겸상하였던 것입니다. 원하지 않던 늦둥이를 보신 애처러움이 그런 사랑으로 표현되신 것 같았습니다. 식사하는 예절을 익히는 것은 싫었으나 아버지의 밥상에 오른 우선순위의 반찬은 괴로움을 보상하고도 남았습니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중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때부터 아버지의 사랑을 그리
워하며, 사춘기의 외로움과 방황을 많은 독서와 글쓰기로 달래게 됩니다. 유독 저만 가까이 두고 특별한 사랑을 주신 아버지의 기억이 저로 하여금 평생 사부곡을 부르게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어려움에 부딪칠 때 어머니를 찾는다 하는데 이상하게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마다 아버지를 부르게 됩니다.

아버지께서 떠나신 후, 가끔 오빠들이 어머니 말씀을 소홀히 들을 때 어머니는 “ 아버지가 계실 땐 어흠 하시는 기침 소리만 들어도 아들들이 조용했는데 안 계시니 내 말이 힘이 없구나“ 라고 하십니다. 큰 소리 한번 내시지 않던 아버지가 집에 계신 것만으로도 집은 위계질서가 잡혔고 감히 어머니에게 아들들이 도전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곳 토론토에서 40분 가량 북쪽으로 달리면 그곳에 한인 양로원이 있습니다. 우연히 그곳의 한국인 관리자를 만났는데 그의 말이 잔혹했습니다. 그곳에 부모를 버리고 간 자식들에게 방문하지 말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식들이 왔다 가면 부모들이 따라가려고 매번 울며 소동을 치른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정신이 멀쩡한 부모를 던져두고 한번도 찾지 않는, 관리자가 오지 말란다고 오지 않는 자녀도 문제입니다만, 노인들이 가족을 따라 가버리면 정부에서 타낸 펀드로 관리자 자신의 생활을 꾸려가기가 어려워지니, 관리자에게는 노인 한 명마다가 전부 돈으로 계산되어지는 것도 문제입니다.

신문에 자주 등장하곤 하던 기러기 아빠들의 모습과 생활상이 알려질 때마다 무언지 한국이 잘못되어 간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무엇이 심각하여 기러기 아빠들이 부인 자녀를 외국에 보낸 후 자살을 해야 하는 건지, 그렇다면 자녀의 유학은 의미가 없을 것이며 그 자녀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평생 덜어내지 못할 것입니다.

부인과 자녀는 이곳에서 골프와 자유로운 교육으로 행복을 구가하는데, 기러기 아빠는 외롭게 돈 버는 기계일 뿐인 것입니다.

토론토 리서치 센터가 실시한 정년 퇴직자들의 노후 경제적 여건 서베이에 의하면, 캐나다 사람들이 가장 돈 걱정 안 하고 편히 산다 합니다. 나머지 동양인 노인들 중에 한국 노인 부모가 가장 가난하여 그들의 노후가 문제라 지적되었습니다. 캐나다사람들은 자녀들에게 18세 지나면 자립 하도록 합니다. 자녀들도 부모에게 기대하지 않습니다.

한국인 부모는 고생 고생하여 자식에게 다 바치고, 말년에 돈 없고 자식에게도 외면 당하는 짐 꾸러기가 될 뿐입니다. 어느 나라(일본 중국 포함)에 대학교육에, 자녀의 결혼비용 주거까지 해결해 주는 부모가 있으며, 늙어 병들면 외면 받는 비 윤리가 있는지 재삼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또한 캐나다사람들의 80% 의 노부모는 자식과 살기를 원하고 그 중 60%는 노부모와 동거합니다. 야외나 식당엘 가도 노부모를 모시고 나오는 지극한 캐나다인들을 많이 목격하는데 참 부러웠습니다.

아버지의 밥상은 집안의 어른이라는 상징적 표현이며 사랑이고 화목입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아버지의 밥상은 뒷전으로 밀렸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자녀들이 차지합니다. 그에 따라 밥상 뿐 아니라 모든 것이 자식 우선순위가 되었습니다. 이런 생활양식 은 결국집안의 위계질서와 예절이 모두 뒤바뀐 결과를 초래하고, 무서운 것은 자녀들에게 모두 저밖에 모르는 이기심을 키워주게 된 것입니다.

또한 협동 양보와 봉사 정신의 결핍을 가져 오게 한 원인은 이러한 우리의 가정에서부터입니다. 지나친 자녀 위주의 생활 방식은 결코 자녀의 미래를 위해서나 부모와의 관계를 위해서나 자제해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

글쓴이 오마리님은 샌프란시스코대학에서 불어, F.I.D.M (Fashion Institute of Design & Merchandising)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후 미국에서 The Fashion Works Inc, 국내에서 디자인 스투디오를 경영하는 등 오랫동안 관련업계에 종사해 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 그림그리기를 즐겼으며, 현재는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많은 곳을 여행하며 특히 구름 찍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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