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업을 하다가 문을 닫는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당장은 이익이 안 나더라도 좋은 날이 오리라는 기대감이 있다면 오늘의 고통을 감수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데 여북하면 폐업할까요.
지금 중소 자영업자들이 경제난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가게 월세가 밀려 보증금이 다 날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영업용 소형차를 개조해 간이음식점을 차려 거리로, 아파트 단지로 나서거나 지하철에서 중국산 생필품을 파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투 잡 족이 되어 야간 대리운전으로 사무실 월세를 겨우 내는 부동산 중개업자들도 있다고 합니다.
3년 전쯤 필자가 사는 아파트 단지 진입로에 과일을 파는 포터 트럭 한 대가 처음으로 나타났습니다. 얼마 뒤엔 문어 빵을 구워 파는 다마스 차, 어묵을 파는 소형차가 잇달아 들어섰습니다. 교회 앞에는 핫도그 장사가, 중학교 앞에는 붕어빵을 파는 차가 고개를 디밀었습니다. 은행 지점 앞에는 황토 러닝셔츠와 팬티를 파는 행상이 있고 병원 입구에는 과일바구니와 월남치마를 진열한 행상이 있습니다. 공원 곁에서 뻥튀기를 파는 자동차는 몇 달에 한번씩 세금처럼 주차위반 스티커를 받아 30만원을 낸다고 합니다. 고달픈 서민의 단면도입니다.
주가가 좀 오르니까 정치인들은 경제는 좋은 것이라고 강변했습니다. 뭐 즐거워할 일이 있다고 포도주 잔을 부딪치며 파티를 벌이는지 모르지만 서민들은 ‘서민 주거안정’공약을 비웃는 소형 아파트 전세 값의 광등(狂騰)이나 얼어붙은 경기에 절망하고 있습니다. 지하철 안팍에 걸인과 노숙자들은 왜 그렇게 많이 눈에 띄는 지요.
소득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GINI)계수가 2003년이래 계속 악화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양극화 해소가 최우선과제라는데 빈부격차는 왜 확대되고 있나요. 종합부동산세는 국민 2%만 내는 세금이라면서 편을 갈라서‘세금폭탄’으로 쥐어짠 돈은 어디에 쓰시나요. 언론취재지원을 선진화한답시고 민권 감시의 최일선 현장인 경찰서 기자실까지 통폐합하면서 예비비 55억원을 쓴다지요. 기가 찰 일입니다.
얼마 전 아파트 단지 인근의 신축 오피스텔 건물 1층에 과일만 파는 33평방미터 정도의 체인점이 생겼습니다. 한참 재미있게 장사를 하던 중 재벌기업의 할인점 체인이 100미터도 안 되는 곳에 실 평수가 500평방미터는 되어 보이는 청과물 마트를 한 달 전에 열었습니다. 규모도 큰데다 점포 앞의 빈터를 매장으로 활용하면서 밤 11시까지 영업하는 이 상점으로 인하여 인근의 식품 가게들은 심대한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도처에서 펼쳐지는 약육강식의 작은 예일 뿐입니다. 아무리 ‘균형 발전’과 ‘양극화 해소’를 외쳐도 경제의 먹이사슬에 의해 피라미들은 죽어 갑니다. 이런 약육강식은 나라밖에서도 전개되고 있습니다.
최근 NHK는 인도 출신의 철강왕 락시미 미탈의 글로벌 전략을 방영했습니다. 미탈 그룹은 2006년 세계 1위의 유럽 철강회사인 아르셀로를 각국 정부들의 저항 속에 269억 유로에 인수해 아르셀로 미탈을 창립했습니다. 포스코의 철강생산량은 연간 약 3,000만 톤, 일본은 신일본제철과 JFE를 합쳐서 6,300만 톤을 넘는데 아르셀로 미탈 그룹은 1억3,000만 톤이라고 밝힙니다. 50년만에 금의환향한 미탈은 자신의 지구적 확장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아르셀로 미탈 그룹은 부인했지만 포스코 인수설이 나왔듯이 대기업이라고 약육강식의 안전지대가 아닙니다. 인도에선 포스코와 아르셀로 미탈이 경쟁적인 설비확장을 추진중입니다.
그러나 글로벌화에 편승하여 아무거나 허겁지겁 매각하는 것은 곤란하죠. 사법당국의 판단에 맡겨진 외환은행의 론스타 그룹 매각 의혹사건만 보아도 국제투기자본에 기간 은행을 팔아먹는 위정자들이 무슨 국가의 비전을 갖고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국회에서 매각의 주역들이 ‘계미 5적‘이라고 맹공을 받았겠지요.
경제 정책이 중소상인도 보호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중추적인 기간산업도 보호하지 못하는 리더십의 부재로 보입니다. 국민은 두 눈을 부릅뜨고 정치권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정당은 자신도 국민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게 되는 법이죠.
100년 가는 정당을 만들겠다던 호언장담이 아직도 귓전에 맴도는데 불과 3년여에 문을 닫는 당을 국민들은 지금 보고 있습니다. 대의(代議) 정치체제의 위임을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한으로 착각하여 여론을 무시하고, 예꽤나 신선했던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라던 생각을 잊어버린 것 같은 때 정당은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더욱 외면 받게 되는 거지요. 이 나라 정치인들은 문닫은 열린우리당의 폐업 사례를 뼈아픈 교훈으로 삼아야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