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시 연무읍 금곡리에 소재한 후삼국시대 후백제 견훤왕이 잠들어 있는 능역[陵域]이 시민들의 좋은 쉼터로 각광받고 있다,
경상도 상주사람으로 군에 몸담고 있던 견훤은 신라 말기 나라가 혼란한 틈을 타 자신을 따르는 일군[一群]의 군사를 거느리고 신라에 반기를 들고 세력을 넓혀가면서 후백제를 건국했다,
한때 전성기에는 전주를 도읍으로 정하고 호남권을 중심으로 당시 자웅을 겨루던 고려 왕건과 신라 후백제가 정립한 후삼국 시대를 열어 일세를 풍미 하기도 했으나 후계자로 두번째 부인의 아들 금강을 태자로 세우자 이에 반발한 장남 신검의 반란으로 끝내 나라를 아들에게 뺏기고 자신은 고려 태조 왕건에게 귀의 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견훤 왕은 쇠해질대로 쇠해진 신라를 침략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애왕을 목베고 그 왕비를 겁탈한 것으로 나타나 있을 만큼 횡포한 임금으로 묘사되고 있으나 세력이 강성하던 시기에는 후삼국 중 가장 많은 강토를 소유했고 바다 건너 오월과 후당 등 동아시아 제국과의 교역이 성했던 기록도 남아있다,
견훤 임금은 왕건에게 귀의한 뒤 그 군대를 빌려 자신의 왕위를 찬탈한 큰 아들 신검 군을 토벌 자신이 세운 나라를 스스로 멸한 비운의 군주로 말년에는 논산시 인근의 한 절에서 묶다 죽기전에 자신이 세운 나라의 수도 였던 전주가 잘보이는 곳에 묻어달라는 유언에 따라 현재의 위치에 모셔졌다,
지금도 날이 개인날에는 전주시와 모악산이 한눈에 들어올만큼 탁트인 양지바른 곳에 모셔진 견훤 임금 릉은 1970년 견훤 임금의 문중 으로 알려진 황간 견씨 문중에서 후백제왕견훤릉[後百濟王甄萱陵]이라는 비석을 세우고 매년 좋은날을 택해 제향을 모시고 있다,
논산시도 전임 임성규 시장 재임 중 불교 사암연합회에 예산을 지원 5-6회 천도제를 지내기도 했으나 시예산을 들여 행사를 치를 만한 정신문화적 가치가 있는가라는 일각에서 제기한 반대여론이 높아지자 흐지부지 폐지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견훤 임금에 대한 이런저런 역사적인 평가와는 상관없이 울창한 숲과 잘 다듬어진 묘역은 시민들은 물론 외지 관광객들도 심심찮게 방문 하는 등 좋은 쉼터로 기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