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조선시대 논산은 노성 ,은진 ,연산 3현[縣]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 역사의 흔적은 연산 노성 은진 3현의 관아가 있던 곳에 당시 고을을 다스리던 현감이나, 목사 관찰사 등 관리들이 환과고독[鰥,寡,孤,獨 ]을 살피고 백성을 위무하며 선정을 베푼 기록들이 담긴 선정비나 영세불망비 등에서 엿볼 수 있다,
당시의 사회상이나 시대정신이 담긴 소중한 역사문화유산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관내 곳곳에 세워진 비석들은 수 백년의 풍화에 시달리는 동안 원형이 훼손되거나 돌에 새긴 글자들이 마모 되는 등으로 이에 대한 적극적인 보존과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 있는 이들의 간단없는 지적이 있어 왔다,
은진현[縣]의 경우 논산시청 친절행정국장을 끝으로 퇴임한 장동순 전 국장이 십수년전 은진면장으로 재임 하면서 비석거리 등 관내 곳곳에 산재해 있던 비석들을 현재의 면사무소 옆으로 옮기고 충남역사문화연구원 등에 의뢰해 비석들에 새겨진 한문 내용을 풀어내 설명문을 게시 하는 등으로 역사를 더듬는 뜻있는 후인들의 박수갈채를 받아 왔다,
그러나 연산 현[縣]의 경우 그 당시의 관아 출입문이던 연산아문 입구에 10여개의 비석들을 모아 가지런히 세워 놓고는 있으나 자칫 오가는 차량들의 추돌이 염려 되는데다 수년전 한 비석의 기록에 나타난 주인공의 후손을 자처하는 이들이 자신들 선대 조상과 관련한 비석의 글씨가 마모돼 알아 볼수 없다는 이유로 임의로 비석의 기록 내용을 풀어쓴 석판을 비석 위에 덧씌우는 등으로 비석의 원형을 훼손하는 일이 벌어져 지역주민들의 빈축을 샀다,
또 은진면의 경우와 같이 비석문에 대한 이렇다할 설명 자료가 없어 뜻 있는 지역주민들이나 역사를 더듬어 찾아오는 길손들의 아쉬움을 자아내고 있다,
노성현[縣]의 경우는 더 심각해서 현재 노성면 읍내리 면사무소 입구에 위치한 주민자치센터 주차공간 한켠에 18개의 비석을 모아 세워 놓고는 있으나 차량들이 내뿜는 매연에 상시 노출된데다 주차차량과의 추돌위험이 상존하고 있어 아주 특별한 보존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여론이다,
특히 노성현[縣]의 비석들은 현재의 장소로 옮겨오면서 비석들의 하단부 글씨가 새겨진 부분까지 땅속에 묻히는 등으로 더욱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편 취재에 나선 굿모닝논산 김용훈 대표는 조선조에 새워진 지방관리들의 선정비나 공덕비 영세불망비 등이 문화재적 가치와 상관없이 당시의 시대정신을 재조명할 수 있는 귀중한 역사적 자료임에 비추어 노성 연산 두곳의 비석군에 대해서는 최소한 은진면의 비석군 관리 사례를 참고해서 적극적인 관리 보존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