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희랍의 철인 아리스토 텔레스는 “ 사람은 사회적동물이라고 말했다”
중국 사람들은 그 훨씬 이전에 사람을 “人間‘으로 표현, 사람은 홀로 살수 없는 간[間]적 존재임을 강조하고 있다,
예부터 지금껏 역사라는 것이 결국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사에 다름 아니다,
세속이 말하는 소위 성취를 이룬 사람들의 삶을 더듬어 보면 한결같이 좋은 사람들과의 인간관계가 그 바탕이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의 제환공은 관중을 만나 패업을 이뤘고 말년에는 역아, 수초, 개방, 같은 소인배를 중용하면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 했다,
한고조 유방은 장량 소하 같은 명신을 만나 나라를 창업했고 삼국지의 유비는 제갈량을 만나 천하삼분지계를 이뤘다,
말하자면 좋은 벗을 만나면 성공 했고 나쁜 벗을 만나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공자의 가르침 한구절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 절실하게 마음에 닿는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유익한 벗이 세 종류가 있고 해로운 벗이 세 종류가 있으니 정직한 사람을 벗하며 성실한 사람을 벗하며 견문이 많은 사람을 벗하면 유익할 것이요,아첨하는 사람을 벗하며 굽실거리기를 잘하는 사람을 벗하며 말을 잘 둘러대는 사람을 벗하면 해로울 것이다,
공자 왈 익자삼우[益者三友] 요 손자삼우[損者三友]니 우직[友直]하며 우량[友諒]하며 우다문[友多聞]이면 익우[益友]요 우편벽[友便辟]하며 우선유[友善柔] 우편녕[友便佞]이면 손의[損矣]니라
정직한 사람과 벗하면 자신의 허물을 듣고 깨닫게 되고 신실한 사람과 벗하면 성실로 나아가게 되며 견문이 많은 사람을 벗하면 명철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편[便]은 습관이다, 편벽[便辟]은 위의에는 익숙하지만 정직하지 못함을 이르며 선유[善柔]는 아첨과 복종을 잘하지만 성실치 못함을 이르며 편녕 [便侫]은 입으로 하는 말에만 익숙하여 견문의 실상이 없음을 이르니 이 세 가지는 손익이 바로 반대가 된다,
윤씨가 말했다,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 까지 모름지기 벗하지 않고서 이룬자가 있지 않은데 그 손해됨과 유익함이 이와 같으니 벗을 사귀는데 어찌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굿모닝논산 대표 김용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