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당인 새누리당 충남도당[ 위원장:박찬우]은 2016년도 당직개편을 통해 박승용[55] 논산시의회 산업건설위원장[재선]을 대변인에 전격 발탁 눈길을 끌었다.
내노라하는 현역 도의원을 비롯한 명망가 그룹을 제치고 집권 새누리당의 도당 대변인으로 발탁된 박승용 의원은 이날 대한민국 신문기자협회와 언론인 연합회가 공동주관한 “2016년 한국사회를 빛낸 ” 대한민국 충효대상“을 수상해 기쁨을 더했다.
논산시 반월동에서 넉넉지 못한 가정에서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반월초등학교 기민중학교 논산공고를 졸업히고 치열한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한때 논산역 인근에서 역전화원을 운영하기도 했고 국토유지건설사무소에서 근무하기도 한 박승용 의원은 몸에 밴 근검절약으로 자립기반을 구축하면서도 그럭 저럭의 삶에 안주하기를 거부한 박승용 의원은 주경야독으로 건양대 세무학과에 진학, 열공 끝에 졸업과 함께 학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남달리 부지런하고 성실했던 박승용 의원은 지역의 중추적 봉사단체인 논산청년회의소 회장에 당선 된 후 지역사회의 작고 큰 문제들에 오지랖에 가까운 열정으로 접근, 당면한 문제들을 차근 차근 풀어나가면서 주민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 했고 2010년 치러진 6대 지방선거에서 당시 한나라당 공천으로 시의회 진입에 성공 했다.
6대의회 4년간의 임기동안 누구보다도 부지런한 행보를 보이면서 그는 무슨일이든지 주민들이 제기한 민원에 대해서는 최우선적으로 해결해 내는 열정에 더해 시 집행부에 대한 행정사무감사에서는 대학 때 전공한 세무 회계분야에 대한 독보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단연 으뜸의 시민대의사로서 공직사회는 물론 시민사회의 두터운 신망을 얻기에 이르렀다.
특히 행정사무감사에서 잘못된 행정운용에 대해서는 송곳같은 비판과 동시에 대안까지 제시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은 따뜻하게 감싸 안는 사람중심의 고난도 처신[?]은 주변으로부터 ' 참 괜찮은 사람“ 이라는 중망을 얻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9월 1일 오전 시의회 의원실에서 가자와 만난 박승용 의원은 2년 앞으로 다가온 차기 지방선거의 진로에 대해서 묻는 기자에게 “ 현재는 시의원으로서 주어진 소임을 다하기 위해 진력을 다할 뿐이고 ” 그 다음일은 그때가서 세상의 부름에 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의원 또는 시장 입후보설이 있다는 기자의 거듭된 대해서 그는 빙그레 웃었다. 정치라는것이 살아있는 생물과도 같은 것인데 지금으로서 이렇다 저렇다 할게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도의원 또는 시장 진출설이든 괘념치 않고 당면한 현재에 모든 정성을 쏟아 붇겠다는 말로 피해갔다.
기초의원으로서 도당 대변인이 된 것을 두고 주변에서는 파격이라고 말할 만큼 이례적인 일인데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는 물음에 대해서는 도민들 또는 시민들에 대해서 집권당의 도당이 던지는 뜻의 전달자가 아니라 국민에 대한 사랑이 잔뜩 묻어나는 마음의 전달자가 될것“ 이라고 답했다.
가자는 어떤 신념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좌우명이 있다면 무었이 있는가를 물었다
박승용의원은 서슴없이 말했다.
명심보감 격양시(擊壤詩)에 '대명기재전완석'(大名豈在鐫頑石)가 '노상행인구승비'(路上行人口勝碑)라는 구절이 있는데,이는 즉 '큰 명성이 어찌 돌에 새겨야만 하랴,오가는 행인들의 입이 비(碑)보다 낫다'는 뜻입니다.
이를테면 사람의 거룩한 인품이나 귀한 업적은,그가 죽은 뒤에도 오래오래 문헌으로,비(碑)로,입으로 없어지지 아니하고 전해지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라고 했다.
중국대륙을 개혁과 개방으로 이끌어내 오늘날 세계 최강 반열에 으르게 한 작은 거인 등소평의 “ 내무덤을 만들지 말라 내 인민들의 마음속에 묘비명을 새기겠다 ” 던 유언이 문득 생각나는 대목이다.
말하자면 자신의 모든 것을 다바쳐 주어진 소임에 진력하다보면 그나머지 평가는 후인 [後人]들에 맡긴다는 뜻으로 비쳤다.
아무튼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반발을 거듭해 지난 선거에서 6,222표를 얻어 유력한 지역의 차기 지도자 반열에 박승용 시의원의 발군의 족적에 시민들의 주목도는 한 껏 높아지고 있다.
박승용 의원과 인터뷰를 마치면서 한마디 던졌다.
조정래 작가가 매일 암송하며 스스로를 경계한다는 이양연 선생의 시구 한 구절을 ,,,
천설야중거 [穿雪野中去] 눈 쌓인 들길을
불수호란행 [不須胡亂行] 함부로 걷지마라
금일아행적 [今朝我行跡]오늘 내가 가는 이길이
수작후인정 [遂作後人程] 뒤따르는 이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
이 시는 서산 대사의 작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아니라, 순조 때의 학자 이양연(李亮淵)이 지은 것이다. 그의 문집 『임연당집(臨淵堂集)』에 야설(野雪)이란 제목으로 실려 있다.
그리고 1917년에 장지연이 펴낸 대동시선(大東詩選)에도 이양연의 작으로 소개되어 있다. 이양연(1771~1853)은 정조 때 태어나 순조, 헌종, 철종의 세 임금을 거치면서 벼슬한 성리학자다. 서산 대사의 문집인 『청허당집(淸虛堂集)』에는 이 작품이 아예 실려 있지 않다. 그런데 『임연당집』에 실려 있는 시는 지금 서산대사의 작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작품과는 두어 글자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