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삼국 시대 백제국의 후예를 자처해 완산주 [전주]를 근거지로 후백제라는 나라를 세워 사실상 신라를 멸하고 고려와 자웅을 겨뤘던 견훤 임금은 아들 들의 왕권 다툼에 의한 분란으로 결국 고려태조에게 귀부 . 한서린 여생을 보내고 자신이 죽으면 “완산주가 보이는 언덕에 묻어 달라 ”는 유언대로 논산시 연무읍 금곡리에 묻혔다,
맑은 날이면 전주가 아스라이 바라다 보이는 그 언덕에 조용히 잠든 후백제 견훤 임금의 혼[魂 ]을 일깨운 것은 지난 2001년경 한 정치권 인사가 천도제 성격의 영산대재를 개최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내세우면서다.
비록 싸워 이긴 자가 서술한 역사서에 의해서 이긴 하지만 신라국의 마지막 왕을 목베고 그 왕비를 겁간하고 아들들 훈육에 실패 했으며 이런 저런 이유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세운 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한 몰가치적인 견훤 임금의 행태에 비추어 지방 행정청이 중심이 돼서 이를 기리는 것은 매우 온당치 못하다는 시민사회의 무성한 반대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 시정을 책임지는 시장의 헤아림의 부족과 지방권력에 흐물한 일부 토호 및 특정한 종파 세력은 힘있는 자들의 아집의 벽을 허물기 보다는 그에 영합 결국 “ 후백제 견훤임금릉 보존위원회” 라는 그럴듯한 명칭의 단체를 급조하고 지난 2012년 까지 열한번의 영산 대재를 치렀다.
불교 쪽 스님들의 주축이 돼서 매회 불교의식으로 치른 영산대재를 바라보는 시민일반의 시선은 곱지 않았으되 주로 관변단체 회원들이 동원돼서 매 행사 때마다 2-300명이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군대는 입과 입들은 견훤임금의 패륜적인 혼[魂]을 기리는데 시민들의 혈세를 쏟아 부을 이유가 없다는 볼멘소리들을 쏟아냈고 황명선 시장은 이를 의식한 듯 영산대재의 개최를 마뜩치 않아 했다. 또 행사를 주관해온 특정한 인사들 또한 대체로 부정적인 여론을 극복할 뾰쭉한 방안을 찾지 못하고 견훤임금 영산대재 계속 개최 주장을 접고야 말았다.
마지막 행사에 시비 2천만원 그전에 수 백 만원씩 행사비용으로 지원했던 것을 감안하면 참 비싼 소꿉장난을 한 셈이다.
굿모닝논산은 처음부터 지금 그대로 조용히 잠든 견훤임금 묘역을 보존하면 그뿐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그렇게 말도 많던 견훤임금 영산대재를 폐지하자 시민사회의 뜻있는 인사들 사이에서는 조용히 잠들어 있던 견훤 임금의 혼[魂]을 들쑤셔 일으켜 세워 놓고 명분이 없다해서 11년을 지낸왔던 제사조차 폐지하면 귀신의 앙화가 있지 않갰느냐고 볼멘소리를 전해온다.
그럴 법한 말로 들린다, 공자께서도 귀신은 존중하되 가까이도 멀리도 하지 말라는 말씀을 남겼다, 언필칭 경귀신이원지 [敬鬼神而遠之] 라는 말씀이다.
난세의 풍운아 였으나 도덕적으로 결코 본받을 수 없는 패자[覇者] 견훤의 영산대재를 보활할 까닭은 없겠다, 황명선 시장의 영산대재 폐지 결정에는 박수를 보낼 일이다.
그러나 기왕에 제단을 치리고 젯밥을 올리고 한자 술을 받들어 올리던 제사를 지내온 터 견훤임금의 귀신이라도 있다면 얼마나 서운하겠는가?
바라건대 영산대재는 비록 폐지했다 하더라도 소슬한 가을바람 노니는 시절 하루쯤 택일해서, 견훤임금의 릉 가까운 사찰한군데 택해서 일년에 하루 쯤 그 통한의 혼을 달래줄 술 한잔 들어 올리는 간략한 의식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세싱사람들의 생각이 어떤가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