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간다. 문득 남조의 악부시 중 화산기에 실린 시 한구절이 마음을 적신다.
제 상억 [ 啼 相憶] 그대 생각하며 눈물 흘리네.
누어각루수 [淚如刻漏水]눈물은 물시계처럼
주야유불식[晝夜流不息]밤낮없이 쉬지 않고 흐르네
불능구장리[不能久長離] 긴 이별 견딜수 없네
중야억환시 [中夜憶歡時] 한밤중 즐거웠던 날을 생각하며
포피공중제[抱被空中啼] 이불을 껴않고 하염없이 우네
야 상사[夜 相思]밤마다 그대 생각하네
풍취창렴등[風吹窓簾動]바람이 불고 창가 커튼이 살랑이면
언시소환래 [言是所歡來]혹시 그대 반가운 걸음인가 생각하네
과장된 대목이 없지 않지만 절절한 맛이 우러난다.
화산은 마을 이름이다, 송나라때 한 선비가 이 마을을 지나다가 아주 아름다운 한여인에 그냥 넋을 잃어버렸다,
집으로 오자마자 앓아 누워버렸다, 상사병이다, 이불을 뒤짚어 쓰고 해골같이 말라가는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에게 그는 말한다, 나 화산의 한 여인을 사랑해요 ,그러자 어머니는 그 마을을 찾아가 그녀를 만난다,
제발 우리 아들을 살리는 셈치고 어떻게 좀 해 주오 ,그러자 아가씨는 곧 앞치마를 벗어주면서 선비의 요 밑에 깔아 주라고 말한다, 앞치마와 요 밑이 야한 상상을 떠오르게 하지만 상사병에 대한 처방으로 이보다 더 적절한 것이 있겠는가, 어머니는 그녀가 하라는대로 치마를 넣어준다,
그랬더니 신통하게도 총각이 매칠 뒤 벌떡일어나 밥을 먹기 시작하는 것이다, 밥상을 물린 후 흐뭇해진 어머니는 요 밑의 앞치마 애기를 한다,그 얘기를 들은 청년은 깜짝 놀라 치마를 들어 올리더니 순식간에 우걱 우걱 씹어서 삼키고 만다, "보고싶은 낭자" 라는 한마디 말을 남기고는 숨을 거두었다.
선비의 관은 화산을 지나가게 되어 있었는데 그녀의 집앞에서 상여가 꼼짝을 하지 않았다, 일주일을 그렇게 있자 아가씨는 목욕하고 화장을 곱게 한 뒤 상여 앞으로 나왔다,
그녀가 노래를 불렀다.
군기위농사 [君旣爲濃死]/그대는 나를 위해 죽었는데
독활 위수시 [獨活爲誰施] /홀로살아남아 누구를 위해 몸을 바치리
환약견연시 [歡若見憐時]행복해라 처음 눈길이 마주쳤던 날같이
관목위농개 [棺木爲濃開]관 뚜껑이여 나를 위해 열려다오
노래를 부르자 정말 관 뚜껑이 활짝 열렸고 아가씨는 관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사람들이 그녀의 옷자락을 잡아 당겼지만 소용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두 사람을 합장하고 무덤 이름을 신녀총[神女塚]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 낮익은 스토리는 이후 동북아시아권의 비극적 연애담의 원형으로 자리잡는다.
화산기의 사랑은 진짜 목숨까지건 필사적인 사랑이었다, 이것 저것 실필 것없이 곧장 한 존재의 벼랑까지 직행하는 저 맹렬하고 사남고 어지러운 사랑 그것은 고대사의 시가에서나 존재하는 마음의 화석일 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