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시가 야심차게 추진한 충청유교문화원 건립사업이 부지 선정을 놓고 노성과 연산 양측 주민들이 티걱 태걱 하는 사이 정부는 동 사업에 대해 지지부진을 이유로 총사업비 280억 원 중 국비 부담액 84억 원 중 20억 원을 삭감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부지선정 문제가 타결이 된다 해도 국비 삭감 율은 그대로 시 도가 부담하는 지방비도 적용해야 해서 사업 규모는 당초 계획이 대폭 줄일 수 밖에 없는 터여서 담당 부서로서는 전전긍긍할 밖에 없는 곤혹스런 입장에 처했다.
더욱 이번 달 9월중으로 부지선정을 못하게 되면 애써 추진한 동 사업자체가 무산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9월 중 부지선정을 마무리 해야 된다는 절박감에 휘말린 시 담당 부서는 노성 연산 측 쌍방 추진위 대표들을 만나 설득 작업을 벌여 왔으나 노성 측 주민들은 충청유교문화원을 노성면 병사리에 건립한다는 계획을 내세워 정부예산을 확보한 것이니 만큼 이제 와서 사업부지 변경은 불가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충청유교문화은 기호유교문화권 개발 사업의 상징적인 사업으로 돈암서원이 인근한 연산 쪽에 건립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우는 연산 쪽 주민들은 " 사업이 무산되는 일이 있을지언정 죽어도 노성에는 세울 수 없다" 는 초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더 이상 양 측 추진위를 설득할 방법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시는 오는 17일경 시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20명의 심의위 전체 회의를 열어 최종 결론을 내겠다고 밝히고 있어 양측 주민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분위기다.
시는 당초 임성규 전 시장 재임 중이던 2007년도에 충남역사문화연구원에 의뢰해서 그려낸 충청유교문화권 개발사업 계획은 지역에서 특히 의미 있는 유교문화적이 산재한 연산권 노성권 강경권 3개 권역 개발계획을 수립한바 있다.
그런 연후 황명선 시장이 취임 한 이후 지난 2013년도에 역시 충남역사문화연구원에 용역을 줘서 구워낸 충청유교문화원 건립에 대한 용역 보고서를 토대로 노성면 병사리, 파평 윤문의 사설 종학당이 굽어보는 병사저수지변에 건립하겠다는 계획을 최종 수립, 각고의 노력 끝에 국비 84억 원을 확보하는데 성공 도비 시비 포함 280억 원을 내년도 예산에 반영, 사업을 서둘러 왔다.
시는 당초 논산시 관내 15개 읍면동에 대한 균형 발전 논리와 노성면 또한 기호유학의 한 유파를 형성한 윤증 선생의 고택이 인접해 있고 노성향교 궐리사 등이 인근에 있는데다 주변의 수려한 풍광 등을 입지의 한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으나 이런 계획이 알려지자마자 연산면에 소재한 돈암 서원에 속한 지역유림을 중심으로 한 사계 김장생 신독재 김집 우암 송시열 선생을 존숭하는 지역의 유림들은 충청유교문화원을 노성에 건립 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강력 반반, 논산시에 이의를 걸고 나섰다.
연산 쪽 유림들의 주장에 의하면 돈암 서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앞두고 있는데다 조선조 천하 영재들을 불러 모아 국가 경영의 치도를 가르치는 학문 연마와 인격 도야의 공당이었고 조선예론의 종장으로 존숭되는 사계 김장생 선생의 묘역이 인근에 있어, 기호 유교문화권 개발사업의 상징성을 갖는 충청유교문화원은 반드시 인근에 건립해야 하며 향후 논산시 미래 발전 계획과도 합치한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또 논산시가 당초 중앙부처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계획서에 노성면 병사리를 건립부지로 명시한 것은 맞지만 자신들의 이의 제기에 의해 논산시가 부지선정 문제를 공론의 장에서 다시 다루기로 한 것은 노성면 병사리가 적지가 아니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본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이런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에 직면한 시는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면서 입지 선정과 관련한 유림 및 전문가 그룹의 자문을 통해 결정하겠다는 궁여지책을 내놓고 20여명으로 구성된 심의위원회를 구성 얼마전 1차 심의회를 갖기도 했고 노성 연산 양측이 부지로 제공하겠다는 현지 실사 등을 거쳤으나 팽팽한 의견 대립으로 결론을 짓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노성 측 주민들 및 윤증 윤선거 선생의 문도 그룹은 당초 원안 이행을 고수하면서 왜 느닷없이 연산 측이 끼어드느냐고 볼멘소리를 토하고 있고, 연산 측 주민들은 충청유교문화원 건립 계획을 수립할 당시 담당 과장이 파평 윤씨 문중의 후예로 소위 지역균형발전 논리를 대입 시켜 노성 쪽 유치를 주도 했다는[?] 의혹에 더해서 그런 의혹을 덮기 위해서 소위 심의위를 구성 파장을 극소화 하겠다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또 시장과 소속이 같은 새정련 소속 모 시의원이 시의회 본회의에서 이 문제를 집중 거론 당초원안 이행을 주장한 사실을 들어 그런 의혹을 부풀리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 일부 노성 측 주민들은 현 황명선 시장과 임종진 시의회 의장이 노성면을 방문 지역의 유력 인사들이 모인 공식모임에서 충청유교문화원의 노성 병사리 유치계획을 설명하기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인터넷신문 굿모닝논산 김용훈 대표는 조선 유학은 퇴계 이황 선생을 벼리로 한 영남학파와 율곡 이이선생을 종장으로 한 기호학파의 두 줄기가 극성한 가운데 학문적인 진전이 있었고 특히 사계 김장생 선생은 율곡 선생의 적전으로 조선 성리학을 사람의 도리를 밝히는 예론으로 집대성 해서 조선 예학의 종장으로 추앙을 받고 있으며 그 가르침이 인문학의 이름으로 거듭나고 있는 시점에서 기호유교문화권 개발사업의 중심체로서의 상징성을 갖는 충청유교문화원 부지 선정은 그런 역사적 또는 학문적인 연원을 깊이 성찰하는데서 판단의 준거가 마련돼야 할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또 그런 아주 특이한 가치 질서를 무시하고 단순한 지역균형발전 논리를 대입시키는 것은 온당하지 못한것으로 본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논산시 당국이 중앙예산 확보를 위한 감추어진 사연이 있을걸로 본다며 이문제를 풀기위해 끝까지 안내하며 양측 주민들의 의견을 두루 수렴하고 충청유교문화원에 부과될 역사적 학문적 의의를 퇴색시키지 않고 논산시민사회의 공동선적 중의를 담아내려는 황명선 시장 및 관계자들의 큰 노고가 끝내 의의 있는 결실을 이끌어낼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부지선정 문제에 대한 엇갈린 입장들이 설왕설래하면서 자칫 화합을 해치는 지역 갈등의 심화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한다면서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듯이 논산시가 좀더 유연한 입장을 견지할 필요가 있겠다고 말했다.
그는 충청유교문화원이 비록 논산시 관내에 들어서는 것이지만 이용 주체가 주로 유림 및 선비의 후예들인 점을 들어 현재의 심의워원들 외에 충청권 으로 분류되는 충남 세종 대전 충북 지역의 유림회장 향교 전교 등 유림 대표들의 폭넓은 의견을 청취해 결정하는 것도 이 난제를 푸는데 한 방편 일수 있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노론 소론의 분파와 관련한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윤증 선생과 그 윗대 윤선거 선생 부자 분 모두 사계 김장생 그 아드님 신독재 김집 선생 문하에서 수학 한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윤증 선생은 김장생 선생의 수제자 격인 우암 송시열 선생의 직접 제자였고 그 부친 윤선거 선생은 송시열선생과 평교를 하던 벗이기도 했을 만큼 가까운 사이였다.
그러던 중 당시 학문적 내공이 심후한 윤휴 선생이 주자의 가르침 속 한 구절을 놓고 독창적인 해석을 내놓자 이에 주자학에 경도된 우암 송시열 선생은 주자의 가르침은 단 한자도 바꿀 수도 없고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없다며 진노하고 이를 사문난적으로 몰아 부친다.
그리고 윤휴 선생과 교분이 두터운 윤선거 선생에게 윤휴 선생과의 절교를 종용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윤선거 선생이 끝내 윤휴 선생의 입장을 배척하지 않은 사실이 밝혀지자 송시열 선생은 더 분개한다
그 후 윤선거 선생이 돌아가자 윤증 선생은 스승인 우암 송시열선생에게 부친 윤선거 선생의 부끄러운 족적 [일명 강화도 사건]이 담긴 묘갈명을 시정해 주기를 간청하지만 우암 송시열 선생이 이를 거절한다.
이를 못내 수치스럽고 분하게 생각한 윤증 선생은 끝내 스승 우암 송시열 선생과의 단절을 선언하고 갈라서 소론의 영수로 추대되기에 이르고 한때 연혼관계로 돈독하던 파평 윤문 - 은진송문 은 오늘에 이르도록 서로 혼인을 기피 하는 먹먹한 사이가 계속돼 오고 있으며 우암송시열 선생의 스승인 김장생 선생의 광산김씨 문중 또한 파평 윤씨 문중과는 대체로 서먹한 사이로 수 백 년을 이어 오고 있다는 것이 부인키 어려운 현실이라고 한 지역유림은 설명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