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생 생존시 " 내얼굴의 실오라기 하나 다 그릴수 없다면 그리지 말라 " 에 초상화 못 그려.
- 현재 국립박물관 소장품도 김장생 선생의 5대손 김영택 일수도 있다는조선유학을 설명 곁들여..확신 못해
- 계룡시 선생 말년 은거지 "은농재 " 사계고택으로 홍보 극대화 노려 제작 , 뜻있는 선비 후예들 분통
계룡시가 자체제작해 은농재에 게시한 사계 김장생 선생의 초상 조선 성리학을 사람의 도리를 밝히는 예론으로 재 정립한 사계 김장생 선생의 초상화에 대한 진위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사계 김장생 선생의 직계 후손들의 말에 의하면 사계 김장생 선생은 말년에 초상화를 그리려한 화공에게 " 내얼굴의 수염 오라기 하나 남기지 않고 다 그려낼 수 없다면 어찌 나 일수 있겠느냐"며 초상화를 그리지 못하도록 해서 오늘날 까지 사계 선생은 몰론 그 아드님 신독재 김집 선생에 이르도록 생전에 저술한 가례 집람 상례비요 등 저술은 남아 있으되 사계선생 부자분의 초상화라는 것은 처음부터 없는것 이라고 증언했다.
따라서 현재 국립박물관에 소장돼 있다는 사계선생의 초상화는 사계 김장생 선생의 초상화 임을 증명할 아무런 근거없는 다른 이의 초상화 일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 1967년 입수 했다며 전시 해 놓고 있는 " 전[傳] 김장생 초상" 은 그 설명문 말미에 " 정삼품을 상징하는 관복을 입은 것으로 보아 초상화의 주인공은 김장생의 5대손인 김영택 으로 보기도 한다"는 확신 없는 내용을 덧붙이기도 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사계 김장생 선생이 말년에 은거 한 곳으로 알려진 "은농재" 가 소재한 계룡시는 계룡시를 사계 김장생의 고장으로 대대적인 홍보를 하면서 얼마전 모 화가에게 의뢰해서 국립 중앙박물관에 소장된 확실성이 결여된 "전 김장생 초상" 과 거의 흡사한 초상화를 제작 은농재에 모셔 놓고 사계 김장생 선생의 초상화라고 소개 하고 있다.
이에 대해 광산김씨 문중의 대종회는 계룡시 측이 세계 선생의 말년 은거지 은농재에 모시겠다며 문중 및 전문가 그룹의 자문을 거쳐 선생의 초상화 제작을 한다해서 특별히 반대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사계 선생의 제자 그룹을 자임하는 일단의 유종 사회는 계룡시가 실물을 그려낼 수 없으나 초상화를 그리지 말라는 선생의 유지를 이해하지 못한 채 지역 홍보를 위한 수단으로 얼토당토 않게 초상화를 제작해 이를 은농재에 전시하고 있는 것은 천박하기 짝이 없는 짓이며 사계 선생 및 그 후손들을 욕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광산 김씨 문중의 후예이기도한 굿모닝논산 김용훈 대표도 사계 선생의 직계 후예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있지도 않은 초상화에 대해 아무런 확신도 하지 못하고 이를 전시하는 국립중앙박물관 측의 행태도 문제지만 그 문제의 초상화를 거의 복제[?]해서 계룡시가 이를 사계 선생의 초상회인 것으로 전시하는 것 자체도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 보였다.
한편 계룡시는 지난 2007년 논산시 두마면 일부와 남선리 등을 합쳐 계룡시로 분리 승격한 이후 국방문화도시라는 슬로건과 함께 사계 김장생 선생이 말년에 둘째 부인과 함께 은거 했던 은농재 를 제일의 시 홍보자원으로 개발 , 대대적으로 계룡시를 사계의 고장으로 홍보하는 외에 계룡시 문인협회는 벌써 십 수년째 소위 " 사계문학상" 을 제정 상당한 규모의 문화 행사를 계속해 오고 있다.
현재 국립 중앙박물관에 소장한 " 전 사계 김장생 초상 " 친절하게도 설명문 말미에 " 김장생의 5대손 김영택으로 보기도 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설명을 곁들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