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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저승 갈 때, 무얼 가져갈까?
  • 뉴스관리자
  • 등록 2012-03-12 08:3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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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자 주린 배 채우려, 먹다 만 밥 담는 할머니 모습에 콧등이 시큰
 
매주 금요일 오전 11시 50분, 오거리 소공원 무료급식소 천막 안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과 구수한 고깃국 냄새가 퍼지기 시작하면 삶의 무게가 버겁다는 표정의 어르신들이 한 분, 두 분, 모여들어 줄을 서기 시작한다.

아침 일찍 나와 정성스럽게 음식을 준비한 작은 손 클럽의 부녀회원들은 어르신들의 식판에 음식을 듬뿍 담아드리며 덤으로 환한 미소까지 나누어 드린다.

따뜻한 음식을 받아 든 어르신들이 식탁에 앉아 맛있게 음식을 드시는 한 쪽 구석에서 허리가 반쯤 굽은 할머니가 식사를 하다말고 배식창구로 와서 다시 밥 한 그릇을 더 달라고 요청한다.

어린 것이 뛰어 놀다 집에 돌아와 빈 밥통을 열어본 후, 실망할 에미 없이 자라는 손자의 얼굴이 머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주위의 시선조차 아랑곳 않고 미리 준비한 비닐봉투에 새로 받은 밥과 먹다 만 반찬들을 주섬주섬 담는다.

일주일마다 마주치는 할머니를 보면서 1970년대 보릿고개를 넘던 시절, 동네에서 제일가는 부잣집의 잔치에 일품을 팔던 어머니가 허리춤에서 꺼낸 시루떡을 누가 보기 전에 얼른 먹으라고 눈짓하던 모습이 떠올라, 순간적으로 코끝이 찡해지며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게 된다.

수십 년이 지난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력은 세계 10위권 반열에 올라서 있다.
그러나 아직도 어린손자의 주린 배를 걱정하며 비닐봉지에 음식을 퍼 담을 수밖에 없는 할머니의 사정이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눈앞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입만 열었다 하면 봉사를 운운하며 정부 돈을 제 돈 쓰듯 하는 사람이나 봉사는 말로하고 완장에만 욕심내는 사람, 틈만 있으면 권력에 빌붙어 부를 축적하려는 몰지각한 지도층들의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현실이 참으로 보기 싫다.

얼마 전 몇몇 선배님들과 식사를 하던 자리에서 지난 2010년 봄, 열반에 들어간 법정스님이 색 바랜 낡은 가사적삼과 하얀 고무신, 등짐 지던 지게만을 남겨놓은 채, 청빈(淸貧)이란 소중한 가치를 일깨워 준 무소유의 개념이 화제가 됐다.

법정스님은 무소유의 행복이란 책을 통해 아무리 가난해도 마음이 있는 한, 나눌 것은 있고 근원적인 마음을 나눌 때 물질은 자연히 그림자처럼 따라온다고 했다.

또한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저승길에 오직 하나 가져가는 것은 재물이 아닌 현생에서 지은 업보(業報)이고 그 것 또한,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다는 게 스님의 설법요지이다.

매주 금요일 급식장에서 만나는 할머니가 생각날 때마다 나중에 저승 갈 때, 나는 무엇을 가져갈까? 고민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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