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청주. 무예에 뛰어난 장사로서, 1453년(단종 1) 한명회(韓明澮)의 추천으로 수양대군(首陽大君)
휘하에 들어가, 황보 인(皇甫仁) ·김종서(金宗瑞) 등을 제거하는 데 공을 세워 정난공신(靖難功臣) 2등
에 책록, 병조참의에 임명되었다. 1455년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좌익공신(佐翼
功臣) 2등에 책록되고 양산군(楊山君)에 봉해졌으며, 그뒤 공조판서 ·중추부판사(中樞府判事)를 거쳐
평안도 도절제사 등 중요 외관직(外官職)을 두루 거쳤다. 1466년 임기를 마치고 서울에 돌아오자, 오
랜 지방생활을 위로하여 세조가 위로잔치를 베풀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세조에게 이제 왕위를 물려
주고 여생을 편히 즐기라고 진언하였고, 세조는 승지를 불러 그 뜻을 말하고 왕위를 세자에게 물려주
려 하니, 한명회 ·신숙주(申叔舟) 등이 극력 반대하여 뜻을 돌렸다. 그러나 선위(禪位)를 함부로 진언
하였다고 대간(臺諫)의 탄핵을 받아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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